인제 매봉산 산나물산행
인제군에 소재하고 있는 매봉산에 산나물산행을 다녀왔읍니다. 태백에 있는 바람의 언덕으로 유명한 매봉산을 비롯해 매봉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들이 많이 있지만 오늘은 설악산 서북능선의 끝자리인 12선녀탕에서 진부령가는 국도 건너편에서부터 동북쪽으로 물맑은 계곡을 끼고 길게 뻗어 올라간 해발 1,272m 매봉산엘 올랐다. 설악산의 명성에 가려져 오랫동안 일반 산꾼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산이지만, 최근에 곰취, 당귀 등 온갖 이름난 산나물 자생지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찾는이들의 발길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산이다.
오늘산행은 산나물을 채취하는 시간을 포함해서 약 16Km 도상거리를 종주하는 데 6시간이 주어졌다. 결코 만만치 않는 시간이다. 해발 300m에서 1,272m 매봉산 정상까지 1,000m 조금 못미치는 고도를 꾸준히 치고 올라가야 한다. 자신의 체력을 잘 안배해서 산횅속도와 휴식시간 및 장소를 계획하고 오르지 않으면 상당히 지칠 수도 있는 코스다. 6월 초입의 다소 더운 날씨지만 첫번째 봉오리 밑 안부까지는 별로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이끼옷을 입고 있는 수많은 바위들과 시원한 물줄기가 여기저기 크고 작은 폭포와 소를 만들어 내면서 산행길은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피로도 그다지 쌓이지 않는다.
1시간 40분 정도 올라갔을까 8,9부 능선쯤에 등짝에 큰 배낭을 짊어진 아저씨와 바로 뒤에 중간사이즈 정도의 낡은 천으로 만든 배낭을 매고 내려오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침 6시 이른 시간에 올라 산나물을 한아름 가득 채취해 내려오는 중이라고 한다. 나와 내아내를 내려보면서 이리 늦은 시간에 올라오느냐고 가볍게 나무라신다. 아마 속으론 어느 천년에 산나물 캐서 내려갈 수 있느냐 하는 것 같았다. 첫번째 안부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조금 지나서다. 이미 먼저 올라온 분들은 옹기종기 둘러앉아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있다. 나도 얼른 배낭을 내려놀고 아내와 잽사게 도시락과 과일을 꺼낸다. 앞으로 산행시간이 4시간 남았다. 일행들보다 산행실력이 떨어지는 아내는
지레 겁을 먹고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자는 눈치다. 일행들보다 재빠리 먼저 식사를 마치고 "먼저 갑니다" 인사말을 던지고는 서둘러 매봉산을 향해 우측으로 길을 잡아나간다.
매봉산 9부능선쯤 등로에서 조금 벗어나 여기저기 숲속에서 나물채취하느라 눈과 손들이 분주한 앞서간 일행들을 만났다. 이름모를 나물들을 한웅큼씩 손에 쥐고 있는 사람도 있고 작은 천가방이며 비닐봉지에 제법 두툼히
채워넣은 사람들도 있다. 다들 귀한 곰취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고 퉁멘 소리다. 어떤 분들은 당귀만 눈에 보이는대로 띁어 봉지에 주워 담는다. 나와 아내는 산나물과는 거리가 먼 가짜산꾼에 가까운 수준이다. 산나물과 일행들을 뒤로 하고 매봉산까지 한달음에 치달아 오른다. 매봉산 정상석을 옆에 두고 두사람이 먼저 와서 쉬고 있다. 일단 디카로 흔적을 남기고 배낭을 벗어 휴식을 취한다. 10분도 채 되지않아 올라온 일행들의 손엔 한사람도 빠짐없이 산나물이 듬뿍 들려있다. 나는 호기심 반 욕심 반으로 어느것이 곰취인지 당귄지 이것저것 물어본다. 일행중 한분이 곰취를 식별하는 방법을 세세히 가르쳐준다. 또 한분은 당귀를 알아보는 방법과 참당귀 개당귀를 구분
하는 법까지 설명해 주신다. 산나물에 대해선 무지한 나도 이론만은 금방 따라 배운다.
일행중 한분이 당귀 잎사귀 몇개를 건넨다. 물로 대충 씻어서 한번 씹어보라 하신다. 아내부터 먼저 한잎 씹어본 후 표정이 확 바뀐다. 나도 따라 한잎 털어넣은 다음 씹어본다. 씹을수록 고소하면서도 당귀 특유의 한약냄새와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순간 기분이 상쾌해지면서 욕심이 동한다. 견물생심도 생심이지만 미당생심도 생심인가 보다. 아내도 당귀는 조금 따서 가져오라고 명령아닌 명령을 내린다. 이제부터 하산길이다. 나도 산행로를 조금 벗어나 본다. 조금전 배운대로 대충 눈에 띄는대로 산나물을 꺽어본다. 당귀가 맞는지 아닌지 약간 의아심이 간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조금 위쪽 떨어진 곳에서 채취하고 있던 반야님이 한번 보잔다. 참당귀가 아니란다. 그리고는 실물을 보면서 실습을 시키신다. 역시 아는 것 보다 실전과 경험이 중요하다는걸 현장에서 새삼스럽게 느껴본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이때부터 남들보다 움직이는 반경과 속도를 올려 경사면을 열심히 헤집어 본다. 작은 투명비닐 하나 가득 채웠다. 당귀 뿐만 아니라 곰취도 몆장 곁들였다. 이제 남은 숙제는 당귀로 할 수 있는 요리가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고 아내에게 졸라대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의 3대요소가 첫째, 배가고파야 하고. 둘째, 식재료는 제철에 난것으로 신선해야 하고. 셋째는,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라고 한다. 식재료는 해결되었고, 어떻게 해서든 아내를 즐겁게 해준 다음 요리를 부탁하고 시간에 맞춰 굶어본다. 내가 생각해도 일리가 있는 생각인지?
산행마감시간을 30분 초과해서 오후 4시 30분에 날머리인 용대 자연휴양림 매표소에 도착했다. 항상 꼴찌로 마감하던 아내의 등뒤에 산나물에 욕심이 동한 몇분의 산우님들 덕분에 오늘은 꼴찌를 면했다. 말없는 아내의 얼굴엔 안도와 성취감의 표정이 언듯 스쳐간다. 오늘 산행을 계획하고 산길을 잡아주신 산대장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특히, 산나물 현장지도를 해주신 반야님에게는 넘 감사합니다.
2011. 06. 04 (토)
참조
당귀는 미나리과의 여러해살이 식물로 한방에서 중요한 약재로 널리 알려진 약용식물이다.
당귀의 대표적인 효능은 피가 부족할 때 피를 생성해 주는 보혈작용(補血作用)과 피를 원활히
순환하게 해주는 활혈작용(活血作用)이 뛰어나며, 항암효과 및 혈압강하작용이 뛰어나다고 한다.
약리학적으로 당귀는 관상동맥의 혈류량을 촉진시키고, 적혈구 생성을 왕성하게 한단다.
당귀는 뿌리를 약재로 쓰지만 어린싹, 잎, 줄기를 이용하여 다양한 먹거리로 활용하였던 이땅의
대표적인 산나물중 하나였다.
우리 선조들께서는 입춘 무렵이 되면 움파, 산갓, 미나리싹, 무싹, 당귀싹 등의 매운 맛을 가진
다섯 가지 재료로 입춘오신반(立春五辛盤)이라는 나물을 만들어 입맛을 돋우는 풍습이 있었다.
이 다섯가지 나물은 겨울동안 부족하였던 비타민과 무기질을 공급하여 줌으로써 봄철에 원활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작용을 한다.
조선조 후기 실학자 유득공선생이 쓴 경도잡지에도 경기도 지방의 여섯읍에서는 진산채(進山菜)라
하여 움파, 산갓, 미나리싹, 무싹, 당귀싹 등의 오신반(五辛盤)을 궁중에 진상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당귀의 새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