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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과지리산

[스크랩]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

by 아자여 2011.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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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라고는 ‘한강’밖에 모르고 살던 한 서울 토박이가 섬진강을 보고 말했다. “아, 굽이쳐야 강이로구나.” 강 다운 강, 강보다 더 예쁜 강을 보려면 섬진강으로 가라. 봄날의 섬진강변은 변신의 귀재다. 3월부터 매화가 해끗해끗 봉오리를 트면 노란 산수유가 이에 질세라 마을을 살짝 물들인다. 핑크 벚꽃들이 도로 위를 흩날리는 건 3월이 다 지날 때 즈음. 색색의 봄꽃을 만나고 싶다면 섬진강에 가야 한다. 조금 성급하게 발을 떼 거나, 아주 잠깐 게으름을 피워도 섬진강은 그림같은 삼색풍경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광양 매화 축제(3월11일~19일)는 이미 지나갔지만 구례 산수유 축제(3월25일~4월2일), 화개 벚꽃 축제(3월31일~4월2일) 기간은 달력에 꼭 체크할 것. 하지만 시기를 놓치더라도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섬진강의 명물이 봄꽃 뿐이랴. 하얀 수증기 뿜어내는 증기기관열차, 줄 하나로 사람을 나르는 나룻배, 소나무 향이 바람에 묻어나는 모래톱. 발랄한 섬진강부터 우수에 젖은 섬진강까지, 볼거리 즐길 거리가 강변 따라 곳곳에 숨어 있다. 입도 즐겁다. 섬진강변 어디서든 맛볼 수 있는 참게요리, 재첩국, 다슬기탕, 산채정식, 싸리버섯….
 

곡성부터 광양까지 섬진강 제대로 느끼려면


>> 가는 길

전남 곡성부터 출발해 전남 구례~경남 하동~전남 광양으로 이어지는 코스라면 섬진강을 제대로 느끼고 올 수 있다. 자가운전으로 서울→곡성까지는 경부고속도로→(천안분기점)천안논산간 고속도로→(논산 분기점)호남고속도로→전주→26번국도→17번국도 순서가 빠르다. 경부고속도로를 그대로 타고 대전 찍고 호남고속도로로 빠지는 방법도 있다. 일단 17번 국도를 타면 섬진강변에 가까워지면서 곡성으로 진입하게 된다.

>> 섬진강 관광(가는 길·숙소·축제 등) 종합 안내

※곡성군청=(061)360-8324, www.gokseong.go.kr

※구례군청=(061)780-2224, www.gurye.go.kr

※하동군청=(055)880-2375, www.hadong.go.kr

※광양시청=(061)797-2731, gwangyang.jeonnam.kr

 


 

▲ 섬진강을 차로 휘익 달리다가도 '여기다' 싶으면 바로 내린다. 강물 따라 산책할 수 있는 둑길, 호젓한 대나무 숲을 그냥 지나치기 싫다면. 사진은 운척면 금정리 둑길 옆 대나무 숲.
섬진강 따라 차만 타고 쌩 달리다 보면 놓치는 것이 많다. 섬진강을 확실히 느끼고 오려면 당연히 차에서 내려야 한다. 자동차 도로를 벗어나 자전거 길을 달리거나, ‘건강 지압길’과 강 바로 옆 둑방길을 걸어 보자. 자동차에서 내려야만 볼 수 있는 경치 좋은 길, 건강에도 좋은 ‘길’‘길’‘길’을 소개한다.
 

>> 곡성에는 쉬었다 갈 곳이 많다

뺑덕 어멈의 고개는 뺑덕 어멈의 마음씨처럼 불룩불룩 꼬불꼬불 굽이가 높고 비틀어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 그래서 오히려 건강에 좋다. 고개를 넘다 보면 ‘도깨비’ 조각상이 나오고 가정리 가정역 앞 강변을 둥글게 감싼 모양으로 촘촘히 들어찬 바위들인 ‘도깨비살’(‘살’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쌓는 방죽)이 도깨비상 뒤쪽 저편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마천목 장군이 도깨비를 시켜 쌓았다는 전설이 깃들어있다. 징검다리인줄 알고 콩콩 뛰어다니다가 바위 이끼에 미끄러져 강물에 빠졌다. 도깨비의 소행이었을까? 위험하니 구경만하자. 가정역 앞 ‘두가세월교’를 건너면 북쪽으로 건강 지압길 공원이 조성돼 있는데 여기서는 돌무더기 위를 마음껏 뛰어다녀도 좋다. 말랑말랑해진 발바닥으로 이번엔 청소년야영장(061-362-4186)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자전거 대여료 1인용 3000원·2인용 5000원·2시간 기준. 코스는 2.2㎞·11.6㎞·25㎞가 있다). 시원한 강 바람은 현재, 아직 피지 않은 벚꽃 향기는 미래였지만 상상만으로 좋았다.

>> 구례 주민들의 산책 코스 ‘금정리 둑방길’

▲ 가정리 두계교 아래 빼곡히 들어찬 ‘도깨비살’
“위험하니 따라하지 마시오.”

‘강북’을 달리는 19번 국도와 ‘강남’을 달리는 861번 지방도가 있다. 소설가 김훈은 저서 ‘자전거 여행’에서 861번을 타고 달렸다고 한다. 왜 그랬는지, 달려보면 알 수 있다. 차가 많지 않아 한적하고 더 운치 있다. 특히 문척면 금정리 강변에 형성된 둑방길은 북으로 달려서는 발견할 수 없는 보물. 861번 도로를 달리다가 문척면을 지나 왼쪽 강변길로 들어서면 왼쪽 논과 강 사이 우뚝 솟은 둑방길이 나타난다. 그 때 차를 세우고 걷는다. 도시락가방 메고 논두렁을 걸었던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정겨운 길이다. 하루 한번은 운동삼아 이 길을 산책한다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살짝 부러워졌다.

 

>> 하동·광양 쪽 넓게 펼쳐진 갈대밭이 아름답다

섬진강 따라 느릿느릿 걷기 좋은 곳은 광양·하동 쪽이다. 강이 바다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하류로 접어드는 지점이라 넓게 펼쳐진 모래톱이 아름답고 갈대밭도 운치 있다. 물론 문제는 주차.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걷고 싶어도 못 걷는 경우가 허다하다.

섬진교에서 화개방향으로 300m쯤 가면 ‘하동포구 노래비’가 보인다. 이 곳이 벚꽃 둑길(약 1.5㎞)의 시작이다. 주차는 인근 하동 문화예술복지회관에 한다(무료). 벚꽃 둑길 가장자리에는 벚나무가 띄엄띄엄 서 있다. 오른쪽으로는 19번 국도가, 왼쪽으로는 섬진강이, 강을 마주하면 맞은편에는 광양 매화마을이 보인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흙 냄새, 강물 냄새가 더욱 진해진다. 옆 도로로 달리는 차 소리에 강 위에 떠 있는 고깃배 삐걱 거리는 소리가 섞인다. 송림공원 앞 자전거 도로(자전거 대여소 없음)는 강따라 소나무 그늘이 있어 산책길로 좋다. 자전거 도로라지만 길 군데군데 소나무가 심어져 있어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엔 위험하다. 공원 주차장(1인당 입장료 1000원 내면 주차 무료) 이용.

>> 모래톱을 걷고 싶을 땐, 평사리 공원으로 간다.

모래톱은 강과 가장 가까이 걸을 수 있는 곳이다. 자동차를 타고 섬진교에서 화개 방향으로 가다 보면 푸릇푸릇한 악양 들판 앞으로 금빛 모래 들판이 펼쳐진다. 이곳이 바로 평사리공원 강변 모래톱. 평사리공원 주차장(1인당 입장료 1000원 내면 주차 무료)에 차를 세운 후 강 쪽으로 내려가면 평사리공원이 나온다.

각양각색의 표정으로 하늘을 이고 있는 수십여 개의 ‘장승떼’를 구경한 후 강 쪽으로 걸었다. 바닷가 백사장 위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바닥은 생각보다 단단해서 걷는 데 별 지장이 없다. 흐르는지, 고여 있는지 물소리조차 내지 않을 정도로 말이 없는 섬진강. 가까이 다가가면 마음을 열까 싶어 강 쪽으로 바짝 붙어 걸어봤다. 걷다가 맑은 강에 얼굴도 비춰보고, 나뭇가지 하나 구해 와 강바닥에 남몰래 유치한 낙서도 해본다. ‘좀 걸었다’ 싶을 즈음엔 공원 벤치 않아 넋 놓고 먼 산 구경을 했다. 가끔 모래바람이 일어나니 주의할 것.

>> 쌍계사 십리벚꽃길은 벚꽃철에 난리가 난다

화개장터~쌍계사까지 6km 구간을 일컫는데, 젊은 연인들이 이 길을 함께 걸으면서 결혼을 약속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혼례길’, ‘혼인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4월초가 되면 이 환상의 벚꽃 터널에서 연분홍 꽃눈이 휘날린다.

▲ 하동~광양 섬진강 '걷기' 지도
● 숙박

곡성·구례

곡성에선 호텔 뺨치는 모텔이나 번듯한 펜션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주인 맘 씀씀이 좋은 민박, 섬진강 내려다보이는 모텔이 몇 군데 있다. 곡성 청소년야영장 옆 물안개 쉼터 민박(061-362-6633)은 30평대 넓은 방을 단체로 빌리기 좋다. 섬진강이 내려다 보인다. 10인실 15만원, 4인실 5만원. 6인실 3개를 운영하는 나룻터 가든 민박(061-363-7940)도 강이 보이는 곳. 1박에 4~5만원. 리버사이드 모텔(061-363-8201)도 섬진강이 보인다. 침대방과 온돌방 중 선택 가능하고 2인 기준 3만원이다.

구례에는 섬진강변이 보이는 전망 좋은 숙소를 찾기 힘들다. 대신 화엄사 입구 쪽 지리산 프라자 관광호텔(061-782-2171), 지리산 스위스관광호텔(061-783-0700)이나 온천지구 쪽 지리산온천관광호텔(061-783-2900)같은 대형 숙소들이 꽤 있다. 유곡리 다무락마을(061-782-6761)에는 7채의 집이 민박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에선 잠도 잠이지만 대나무숲·황토염색체험학교·감나무 농장 등 즐길거리가 많다. 찜질방을 찾는다면 피아골 입구에 식당·수면실 등을 갖춘 피아골 24시 한증막(061-783-7775)이 있다.

하동·광양


화개장터 주변에 숙박시설이 몰려있다. 전망 좋은 곳을 찾는다면 하동읍 미리내호텔(055-884-7292·사진)이 좋다. 모든 객실에서 섬진강이 보인다. 침대 시트나 내부 시설 깔끔하다. 주변 산책로도 깔끔하게 꾸며놓았다. 성수기 2인 기준 6만원. 화개면 탑리 성운각(055-883-6302)은 쌍계 십리벚꽃길과 화개천 사이에 있다. 걸어서 5~10분이면 화개장터에 도착한다. 성수기 2인 기준 6만원. 백운산 어치계곡 근처에는 펜션 백운산밸리(061-772-2282~3)가 있다. 전 객실이 황토방이다. 섬진강 주변에서 이만한 펜션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동 쌍계사·화개장터에서 40분, 남해대교에서 40분 거리. 산 속인만큼 꼬불꼬불한 길을 달려야 하는 것이 단점. 성수기 2인 기준 10만원. 찜질방은 광양시 광영동 시내까지 가야 한다. 광영스포렉스 찜질방(061-793-8051)은 여성전용 수면실·휴게실과 산림욕장·토굴 수면실을 갖췄다. 사우나 시설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올 봄, 섬진강을 좀 더 특별하게 만나 보자. 가능하다면 2박3일 어떨까. 구례나 하동, 광양 매화마을만 점 찍고 오는 게 아니라 구례의 서쪽으로 좀 더 올라간 곡성에서 출발해 섬진강 따라 천천히 내려오는 일정.

 

시작은 섬진강 기차마을(061-360-8850). 1933년의 풍경을 간직한 옛 곡성역에 들어서자 ‘은하철도 999’에 나올 법한 증기기관열차가 나타났다. 더 기쁜 건, 실제로 타 볼 수 있다는 사실. 부웅~. 하얀 수증기를 뿜어내면서 덜컹덜컹 옛 전라선 구간을 달린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꼽히기도 한 17번 국도와 부드럽게 흐르는 섬진강 줄기가 내려다 보인다(왕복 요금 어른 5000원·어린이 4000원, 평일 오전11시· 오후2시 출발, 주말엔 4회, 왕복 70분).

증기기관차는 곡성군에서 개발한 ‘관광상품’이지만 호곡나루터에 있는 줄나룻배는 수백년째 그대로 사용되는 교통 수단. 곡성역에서 17번도로를 따라가다 침곡가든에서 왼쪽 강변으로 내려가면 허허로이 떠있는 작은 나룻배가 나타난다. 노도 없고 뱃사공도 없지만 강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한다. 마치 케이블카처럼 강을 가로질러 연결한 줄에 배를 걸어 놨기 때문이다.

8대째 호곡리에 살고 있다는 김창현(75)할아버지. 가방에서 빨간 목장갑을 꺼내더니 줄을 끌어 배에 탔다. “나 태어날 때부터 있었제. 수백년 됐을 것이여. 섬진강에서 여기 딱 하나 남아 있는겨.”

섬진강 지류 보성강에 있는 태안교를 건너 마을로 올라가면 사진작가 임소혁씨가 폐교를 임대해 운영하고 있는 사진 갤러리(섬진강문화학교, 061-363-0269). 임씨가 16년간 섬진강 일대를 돌며 찍은 100여장의 사진이 ‘구름·섬진강·지리산·야생화’라는 4가지 테마로 전시돼 있다.


곡성에서 지리산 아랫 문턱인 구례로 넘어오면 논두렁 사이로 드문 드문 피어난 노란 산수유 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산수유는 뭉쳐야 예쁘다. 노란 꽃에 파묻힌 마을을 보고 싶다면 산동면으로 간다. 산동면 상위마을이 대표적인 산수유마을이지만 좀 더 은밀하고 소박한 풍경을 보고 싶다면 현천마을로 간다. 산동면사무소에서 왼쪽으로 빠져 작은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때묻지 않은 비경이 눈을 홀린다.

19번 국도를 타고 토지면으로 가기 전 들를 곳은 99칸짜리 조선시대 양반집 운조루. 대문을 중심으로 양 날개처럼 길게 뻗은 기와지붕이 230년 전 당시 양반 가문의 위세를 느끼게 한다. 집 전체가 문화재이면서 류씨 후손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공간. 이웃집 주민들이 마실 나와 안주인과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미로 탐험하듯 집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구례의 마지막 코스는 연곡사. 연곡사 가는 길이 더 멋지다. 연인과 함께 있다면 외곡삼거리 입구에서 잠깐 왼쪽을 보시라. 섬진강 지류 연곡천 한가운데 섬처럼 볼록 솟아있는 한적한 소나무 숲이 있다. 정자에 앉아 솔향 맡다 시냇물 보이는 갓길 따라 산책해도 좋다.


광양 매화꽃 축제가 끝나면 강 건너 하동에서 벚꽃 축제가 막을 올린다. 사람들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지역을 오가며 꽃구경하기 바쁘다.

이른 아침, 섬진강 해돋이를 보기 위해 산마루 그리워(061-772-7071)를 찾았다. 광양 다압면 무등암 근처에 있는 조그만 카페. 섬진강의 일출·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겹겹이 이어지는 산 능선을 서서히 드러내며 해가 고개를 내밀자 매화가 얼굴을 붉혔다. 광양 매화마을 청매실농원(061-772-4066) 전망대도 빼놓을 수 없다. 섬진강 물줄기와 하동송림, 매실농원의 3000개 장독이 한 눈에 펼쳐진다. 백운산 동편 자락은 봄의 동선 따라 청매화·홍매화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렸다. 매화 천지에 분위기 파악 못하고 핀 산수유가 오히려 사진 동호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 축제 분위기를 내려고 일부러 달아놓았다는 형형색색의 연은 어색하기만 하다. 최근 이곳에는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세트장이 생기면서 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다음은 하동쪽으로 가 송림공원을 둘러볼 차례. 섬진교 옆 강가에 300년 이상 된 울창한 노송이 우거져있다. 현재 일부는 자연휴식년제(2006년 8월 31일까지)로 통행금지지만 후문 매표소 쪽은 반 정도 개방해 놓은 상태(입장료 1000원). 공원 앞 섬진강변엔 흰 모래톱이 펼쳐진다. 강변 ‘로댕벤치’에 앉아 귀를 기울이면 맞은 편 무등산 무등암의 목탁과 불경소리가 들린다. 간 김에 인근 하동공원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날씨 좋으면 남해바다까지 볼 수 있다. 길 양쪽으로 벚꽃이 늘어서있는 19번 국도를 따라 화개방면으로 계속 직진하면 하동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소설 ‘토지’ 속 모습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누군가 앙칼진 목소리로 주인공 서희의 명대사 “찢어죽이고 말려 죽일테야”를 흉내 내 한바탕 웃음소리가 요란하다. 참판 댁 대문을 열어젖히면 멀리 악양 들판과 섬진강의 봄이 마당 안으로 들어온다. 참판댁 구경보다 인근에서 봄나물 캐는데 열중인 관광객도 더러 있다. 화개약수터도 명소. 쌍계사로 들어가는 길목, 화개천 한 가운데 돌바닥에서 유황천이 나온다. 인근 사찰 스님들이 단체로 나와 약수를 떠 마시는 풍경이 재미있다. 지리산 국립공원 내 쌍계별장(055-883-1665)은 쌍계사 아래 90년 된 고택. 암자처럼 고즈넉하다. 주인 윤석우씨는 ‘편리한 것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이곳에 오면 실망을 많이 할 것이니 알리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충분히 매력적인 곳. 객(客)에겐 시골집 냄새 물씬 풍기는 사랑방을 내어 준다(1박에 3만원~4만원). 군불을 때 난방 하기 때문에 3~4일 전 예약 필수.

일명 ‘영호남 화합의 다리’로 불리는 남도대교를 건너 861번 지방도를 타고 섬진강 물줄기의 종착역 망덕포구에 이르렀다. 강 주변에 있던 참게탕, 재첩국집이 횟집으로 바뀌는 풍경. 바다와 가까워졌다는 얘기다. 10월 전어 축제 때면 흥청거리는 포구가 지금은 좀 썰렁하다. 일몰 시간대에 맞춰 태인대교에 도착하면 가슴 속까지 ‘짠하게’ 물들이는 석양을 만날 수 있다.

 

● 곡성

 

① 삼기 국밥-순대국밥

돼지의 온갖 내장으로 만드는 순대국은 사람마다 좋다 싫다 분명한 음식이지만 이곳 순대국은 아무거나 넣고 만든 ‘잡탕’이 아니다. 20년 전부터 부산에서 순대국을 팔다 3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는 김정옥(57)씨는 “간과 허파는 맛이 없고 냄새가 나서 넣지 않는다”고 주장. 순대 속에 돼지 새끼보(나팔관)를 갈아 넣은 것도 색다르다. 내장국밥 3500원, 머리국밥 4000원. 곡성 장터 뒷편. (061)363-0424

② 새수궁 가든-참게장

남도요리명장대회에서 8번이나 상을 탄 경력이 있는 김혜숙씨가 지휘하는 집. 게장을 담글 땐 진간장 대 조선간장을 10:1로 넣어 너무 짜지 않게 한다. 참게와 더불어 간장물이 든 새송이버섯 맛도 일품. 참게장 백반 1만원, 참게탕 2만5000원. 석곡방향으로 압록교 지나자마자 우회전. (061)363-4633

▲ 순대국밥(왼쪽) - 참게장

③ 나루터-다슬기수제비

 

3대째 낚시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강태공’ 김정국씨가 섬진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부인 류근덕씨가 맛깔스럽게 요리해 낸다. 그래서 이곳엔 메뉴판이 없다. 김씨가 뭘 잡아오느냐에 따라 추천메뉴가 달라진다. 좋은 쏘가리가 잡혔으면 쏘가리 탕이 대표메뉴, 다슬기가 풍년이면 다슬기수제비나 다슬기무침을 추천한다. 없으면 안 판다. 다슬기수제비 5000원, 참게매운탕 4만원(4인). 압록리 옆 하한리 17번 도로변. (061)362-5030

▲ 다슬기수제비(왼쪽) - 팥칼국수

● 구례

 

④ 우리밀식당-팥칼국수

들어가는 재료, 만드는 방법이 간단할수록 맛내기가 쉽지 않다. 팥 칼국수도 마찬가지. 팥과 국수, 소금이 재료의 전부다. 텁텁하고 밍밍하기 쉬운 음식이지만 구례 ‘팥칼국수’는 구례농민들이 경작한 우리밀과 팥을 사용하기 때문에 부드럽고 구수하다. 팥을 곱게 갈아 만든 반죽을 물에 풀고 국수를 끓인 팥칼국수 4000원. 수제비 5000원. 화엄사 입구 구례 특산물 판매장 내. (061) 781-5700

⑤ 지리산식당-싸리버섯전골

지리산에서 채취한 싸리버섯을 소갈비살로 우려낸 육수에 새송이·미나리·청량고추 등과 함께 끓여낸다. 싸리나무처럼 생긴 싸리버섯은 8~10월이 제철. 지금은 염장해 놓은 싸리버섯만 먹을 수 있다. 담백한 국물에 쌉싸래한 싸리버섯맛이 잘 어우러진다. 도라지·달래·취나물·머우나물·토란대·죽순 등 17가지 밑반찬이 미각을 돋운다. 싸리버섯전골 3만원, 산채정식1인분 8000원(2인 이상부터 주문 가능). 화엄사 입구 상가지구. (061)782-4054 매콤한 버섯전골을 원한다면 이곳 아래 지리각식당(061-782-2066)도 괜찮다.

⑥ 은행나무집-흑염소

이곳엔 고깃집 필수품 냉동고가 없다. 그날 그날 잡아서 상에 올리기 때문이다. 99가지 약초가 자란다는 지리산에서 방목한 흑염소만 쓴다. 흑염소 뼈를 고아 우려낸 국물에 데친 수육과 부추를 고추장과 들깨를 섞은 소스에 찍어 먹는다. 산수유차는 서비스. 수육 3만~5만원, 염소탕 1만원. 지리산 온천지구 입구 오른쪽. (061)781-6006

▲ 싸리버섯전골(왼쪽) - 흑염소
⑦ 다슬기 식당-다슬기탕·엑기스

토지면 주민들의 단골 식당. 주인 형필수씨가 개발한 ‘다슬기 엑기스’와 ‘다슬기장’은 어디에서도 맛보기 힘든 이색 메뉴. 다슬기 껍질까지 갈아 즙을 짜낸 초록색 엑기스와 게장처럼 간장에 재운 제2의 밥도둑 다슬기장을 밑반찬으로 서비스한다. 엑기스가 들어간 다슬기 수제비엔 초록빛이 감돌고, 3~4월엔 아욱 대신 쑥을 넣어주는 다슬기탕은 쌉싸름하면서 구수하다. 다슬기탕 5000원. 엑기스 1.5?에 5만원. 토지면사무소 맞은편. (061)781-6756

● 하동

⑧ 단야식당-사찰국수

이끼 낀 계단이 이 집의 30년 역사를 얘기해준다. 원래 ‘백운장’이라는 여관이었는데 10년 전부터 식당으로 쓰고 있다. 스님들이 1년에 한 두 번씩 별미로 먹었다는 ‘사찰국수’(5000원)가 인기 메뉴. 오래 전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여관방에 들어앉아 들깨 국물서 건져 올린 메밀국수를 한 입 넣는다. 들깨 특유의 고소함과 느끼함이 범벅된 맛. 반찬으로 나온 무장아찌와 묵은 김치를 곁들여 먹어야 뒷맛 개운하다. 주인의 음식 철학을 듣다 보면 절대 남길 수 없다. 쌍계사 방면. (055)883-1667

▲ 다슬기탕·엑기스(왼쪽) - 양푼 보리밥 정식
⑨ 옛날 보리밥집-양푼 보리밥 정식

전라도 고흥 출신 아내와 경상도 하동 출신 남편이 운영하는 보리밥집. “요놈 요놈 넣어가꼬 비벼 무그면 참 맛있당께, 참말로.” 주인의 말에 7000원 짜리 양푼 보리밥 정식을 시켜 콩나물·고사리·도라지 등 각종 나물 넣고 비벼 먹었다. 친정에서 공수해온 된장과 고추장이 옛날 보리밥맛을 내는 비결. 보리밥 정식을 시키면 파전, 도토리묵을 ‘리필’해 준다(한가할 때에 한함). 열무비빔밥(5000원), 열무국수(3000원)도 인기 메뉴. 화개 장터 안에 있다. (055)883-9959

⑩ 설송식당-섬진강 재첩국

설송식당은 섬진강 재첩을 낸다. 저렴한 중국산 재첩의 기세가 등등하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 증거를 보여 달라 했더니 주인이 ‘광양 섬진강 재첩’이라고 적힌 보따리를 들고 왔다. 참게장 정식(1만5000원)을 시키면 재첩국이 서비스로 나온다. 재첩국은 약간 짜다. ‘특수 간장’으로 양념한 참게장에는 계피와 녹차잎을 넣어서인지 한약 냄새가 나는 듯 한 것이 비리지 않다. 단 한 마리만 나오는 게 아쉽다. 구 화개장터길 초입. (055)883-1866

▲ 재첩국(왼쪽) - 참게탕

● 광양

 

⑪ 청해진-참게탕

주민들이 ‘참게탕 맛있다’고 꼽는 집. 맑은 날, 주인이 직접 섬진강에 나가 잡아온 참게와 메기·토란줄기·고사리·취나물·표고버섯 등으로 국물을 우려낸다. 국물 한 숟가락 떠 먹는 순간, 가슴 깊숙한 곳부터 쏴하게 시원해 진다. 국물 맛의 비결은 방아잎. “메기나 참게의 비린 맛을 없애주고, 식중독 예방에도 좋다”고 주인이 설명한다. 참게탕 3만원, 재첩수제비 5000원. 관동 마을 안에 있다. (061)772-4925

⑫ 고향집섬진강재첩국-재첩 정식

6000원짜리 재첩 정식상 등장.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재첩국 빼고 반찬만 20가지가 나온다(2인 이상 주문시). 재첩회·삼합·굴 등 재첩보다 몸값 비싼 반찬뿐 아니라 재첩 파전과 각종 나물 무침도 깔끔하다. 반찬 종류는 날마다 다르다. 손톱만한 재첩을 넣고 끓인 후 부추를 송송 썰어 넣은 재첩국이 시원하다. 재첩 손질 작업 때문에 오후 3시~5시 문을 닫는다. 5시 이후 저녁 식사를 하려면 예약 필수. 진월역 지나 진월 사거리 부근. (061)772-0305

⑬ 삼성횟집-벚굴화로구이·졸복회

원래는 민물장어구이 전문. ‘벚꽃 필 때가 가장 맛있다’혹은 ‘벚꽃처럼 생겼다’는 벚굴화로구이(2인분에 3만원)나 졸복회(2~3인분에 5만원)를 추천. 졸복은 일명 ‘쫄병 복어’. 복어는 복어인데 크기가 한 뼘도 안 된다. 회를 떠도 두어 점 나오는 게 고작. 회 한 접시를 시키면 상당히 많은 수의 졸복이 희생돼야 해 먹기 미안한 감도 있다. 맛은 쫄깃쫄깃 껌을 씹는 느낌. 다 먹고 나면 졸복 맑은 탕이 나오는데 국물 맛 시원하고 담백하다. 과메기· 홍어·개불 등이 딸려 나온다. 망덕 해변 중간 지점. (061)772-2050

▲ 재첩 정식(왼쪽) - 쫄복회

출처 : 길위에 길이있다 ^^
글쓴이 : 짱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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