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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노트북을 열며] 창업국가의 비밀

by 아자여 2011.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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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창업국가의 비밀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
“나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 성공은 1% 재능과 99% 돈과 ‘빽’….”

 2009년 10월께 누군가 인터넷에 올려 인기를 끌었던 글 ‘사회에 나가면 누구나 알게 되는 사실 43가지’의 일부다. 참 씁쓸했다. 일자리 찾기가 힘든 ‘88만원 세대’의 자포자기 심정이 묻어 있고, 상명하복의 위계(位階)를 중시하는 고루한 일터에서 일하는 젊은 직장인들의 답답한 속내도 담겨 있다고 봤다. 이들의 냉소와 절망이 더 커지지 않도록 잘나가는 최고경영자(CEO)들이 젊은이와 직접 소통하는 ‘사회공헌’에 나서라는 주장의 칼럼을 쓰기도 했다. ‘동반성장’만 사회공헌은 아닐 테니 말이다.

 18일 대전에서 열린 ‘제5회 국제 혁신 클러스터 콘퍼런스’에서 『창업국가』의 저자 솔 싱거(Saul Singer)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때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싱거는 벤처 창업이 활발한 이스라엘의 성공 비결로 ‘후츠파(chutzpah)’를 꼽았다. 후츠파는 뻔뻔함, 주제넘음, 철면피, 오만, 놀라운 용기 등 여러 가지 뜻을 담고 있다. 싱거는 한마디로 “후츠파는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싱거에 대한 기사(5월 19일자 E4면)가 나간 뒤 공감을 표시하는 전화를 여럿 받았다. 유호연 목사는 “후츠파는 ‘혁신적 엉뚱함’ ‘창조적 당돌함’을 뜻한다”는 전문적인 해석까지 들려줬다.

 세계 최초로 노트북에서 유·무선 인터넷을 동시에 지원하는 인텔의 센트리노 칩을 개발한 건 인텔의 이스라엘 연구팀이었다. 이들은 인텔 본사와 몇 달간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본사의 일방적 지시에 따르지도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본사를 끊임없이 설득했다. 본사에 도전하는 배짱, 이것도 후츠파였다. 서열과 상하관계를 최소화한 이스라엘 방위군도 그런 사례다.

 ‘유대인은 둘인데 의견은 셋’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스라엘에선 열띤 토론이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총리나 장관, 군 장성도 별명으로 통하는 나라다. 그저 당사자 모르게 등 뒤에서 부르는 별명이 아니라 면전에서 공개적으로 쓰는 별명이다.

 후츠파가 부러웠던 건 조직마다 층층시하인 한국 사회의 계층제와 확연하게 대비됐기 때문이다. 총수의 권위는 하늘을 찌르고 평사원이 CEO를 편하게 만날 수 있는 한국의 대기업은 많지 않다. 후츠파를 흉내내 ‘당돌하고 엉뚱하게’ 행동했다가는 바로 정 맞는 분위기의 조직이 어디 한둘인가.

 『창업국가』는 한국이 이스라엘만큼 벤처 창업이 활발하지 못한 이유로 체면 중시 풍조와 2000년 IT 거품 붕괴의 후유증을 꼽았다. 책 처음의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전 총리의 추천사는 정부가 귀담아 들을 만했다. “한국의 독자들이 이스라엘의 성공이 정부의 잘된 정책에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오해하지 않기 바란다. 우리는 그들에게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그 점이 우리나라의 국가경영에 있어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성공의 주연이 되도록 항상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격려했을 뿐이다.”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



http://news.joinsmsn.com/article/006/55150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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