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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처용무·토우에도 사라센 흔적 있는데 지금은 이슬람 너무 몰라” |
한국 사회가 딜레마에 빠졌다. 지난달 5일 남측으로 표류해온 북한 주민 31명의 북송 문제가 그렇다. 북한에선 남한 귀순을 희망한 4명도 함께 돌려보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집트·리비아 등 이슬람 지역의 소요사태는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그 정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사회적 이념갈등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훈(63)씨를 만났다. 7일 경기도 일산 작가의 오피스텔에서다. 집필실 안 작은 흑판에 쓰인 ‘필일신(必日新)’ 석 자가 눈에 띄었다. 창작에 대한 작가의 의지가 읽힌다. “평생 한 문장을 쓰는 게 중요하다”며 현안에 대해 말을 아껴왔던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북에서 표류해온 주민 문제가 장기화 조짐이다. “우리 민족의 비극이다. 31명의 표류민은 조국을 잃어버린 떠돌이나 고아 비슷한 처지가 됐다. 분단 상황의 야만성을 보여준다. 그들은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안개 때문에 떠내려온 사람들을 이렇게 대해선 곤란하다. 그들은 오도가도 못하는 가엾은 신세다.” -상황을 어떻게 보나. “골방에 틀어박혀 있는 작가로서 가슴이 찢어진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 같다. 그들도 제3국으로 가야 하나? 이건 유엔이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 우리 문제를 스스로 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1960년 출간된 『광장』에서 6·25전쟁 당시 남과 북에 모두 환멸을 느낀 주인공은 제3국행을 선택한다.) -어떻게 했어야 하나. “단순 표류민이라면 사건 발생 직후 돌려보내는 게 좋았겠다. 북한도 제정신이 아니다. 미친 짓을 하고 있다. 이미 한국에 2만 명의 탈북자가 있는데 귀순 희망 4명을 걸고 넘어지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들이 북한에 돌아가면 어떤 취급을 받겠는가. ” 얘기는 이집트·리비아 등 중동사태로 옮겨갔다. 김씨는 무엇보다 이슬람 지역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비판했다. 세계적 이슈를 우리 눈으로 이해할 역량 부족을 거론했다. -이슬람과 민주주의의 양립이 가능한가. “리비아의 경우 서구식 민주주의 틀로 접근하면 그 본질을 알기 어렵다. 민주 대 반민주, 정부 대 반정부, 진보 대 보수의 격돌이 아닌 것 같다. 리비아 내 여러 세력의 다툼에 가깝다. 그들은 숱한 전쟁을 치르며 사막에서 생존해왔다. 사실 우리는 반정부 세력의 정체조차 잘 모르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철학과 문화를 꿰지 못하고 있다. 이집트 혁명도 20대 청년의 분신으로 시작됐다고 하는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 밑에 도도한 흐름이 있었을 것이다.” -중동에 대한 정보가 제한돼 있다. “이슬람을 공부하는 전문가가 없는 게 문제다. 우리에게 제대로 된 이집트사, 터키사, 아프가니스탄사가 있는가. 우리 국운은 제3세계로 넓어지고 있는데 해당 지역을 들여다볼 눈이 없다. 서울대에 중동학과 가 있는가. 세계문화 4분의 1이 이슬람인데 이걸 가르치지 않고 있다. 글로벌화 측면에서 신라 때보다 못한 처지다.” -어떤 면이 그런가. “신라 처용무(處容舞)에 사라센(※중세 유럽인이 이슬람 교도를 일컫던 말)의 흔적이 남아 있다. 페르시아와 교류했다는 증거로 인용된다. 신라의 토우(土偶·흙인형)에서도 아라비아인의 얼굴을 찾을 수 있다. 신라가 사라센의 미학(美學)을 받아들인 것이다. 아랍에 국한할 때 현재 우리의 지식이 신라 때보다 낫다고 장담할 수 없다.” 김씨는 우리 내부의 갈등요인도 짚었다.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리얼리스트 작가다운 면모를 보였다. -이념·종교 등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다수 대 소수의 마찰은 피할 수 없다. 그게 현실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명확하게 제시됐다. 문제는 부를 악(惡)으로, 가난을 선(善)으로 보는 이분법이다. 가난이 도덕적으로 우월한 건 아니다. 물론 한국사회의 많은 부가 정당하게 축적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를 해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요즘 소위 ‘강남 좌파’가 뜨고 있는데. “사회가 다원화된 증거다. 하지만 강남 좌파는 시대의 고통에 동참한 적이 없는 댄디(dandy·멋쟁이)에 가깝다. 시대를 열어갈 힘이 없다. 우리의 앞날은 젊은 후배들에게 있다.” -남북 경색으로 전쟁에 대한 공포도 있는데. “중앙일보가 1년여 연재한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은 한국전쟁 관련 언론 기획 가운데 단연 최고였다. 낙동강이 무너졌다면 지금 대한민국이 있었을까. 전쟁은 없어야 하나 힘의 논리를 부정할 순 없다.” 박정호 문화데스크 ◆김훈=1948년 서울 출생. 한국일보 기자, ‘시사저널’ 편집국장 등을 거쳐 2004년부터 전업작가로 활동해왔다. 소설 『현의 노래』 『공무도하』 『내 젊은 날의 숲』, 산문집 『풍경과 상처』 『자전거여행』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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