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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

[J 스페셜 - 목요문화산책] 여인 탐한 제우스 … 권력자 ‘막장 드라마’

by 아자여 2011.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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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목요문화산책] 여인 탐한 제우스 … 권력자 ‘막장 드라마’
최근 현직 판사의 지하철 성추행 사건 등 엘리트 계층의 성폭력 사건이 잊을 만하면 새로이 나타난다. 힘 있는 계층의 성범죄는 그 악영향이 지대하기에 더욱 엄격하게 다뤄져야 하건만 그것이 쉽지 않은 게 문제다. 성추행 판사를 현장에서 붙잡은 형사들도 판사가 내민 명함에 일순 당황했다고 하지 않는가. 이 문제는 그리스·로마 신화 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간다.

② 유피테르(제우스)와 칼리스토(1744), 프랑수아 부셰(1703~70) 작, 캔버스에 유채, 98×72㎝, 푸시킨 미술관, 모스크바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BC 43~AD 17)가 신화를 집대성해 쓴 『메타모르포세이스(변신 이야기 AD 8)』를 보면 신(神)들의 여인 납치가 에피소드의 태반을 이룬다. 그리고 그것을 예술로 풍자했던 한 인간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로마 신화의 신 중에서도 최고신 유피테르(Jupiter·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동일)는 본처 유노(Juno·헤라와 동일) 외에 수많은 님프와 인간 여성과 관계를 가져 바람둥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제우스가 그저 바람둥이였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그는 유혹의 기술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찍어놓은 여성에게 그 여성의 친지나 동물로 변신해 접근한 다음 강제로 범하는 식이었다. 요즘 기준으로는 엄연히 성폭력범이다.

① 에우로페의 납치(1559∼62), 티치아노 베첼리오(1488?~1576) 작, 캔버스에 유채, 185×205㎝,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미국 보스턴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Europe)에게는 유피테르가 황소로 변신해 접근했다. 해변에서 친구들과 놀던 공주가 그 황소를 보고 올라타자 바로 바다로 뛰어들어 외딴 섬으로 끌고 갔다.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파의 거장인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작품(그림 ①)은 이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황소는 옳다구나 하고 무서운 속도로 헤엄치는 중이고 에우로페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어쩔 줄 모르고 황소 등에 매달려 있다. 그녀의 친구들은 이미 멀어진 해변에서 소리쳐 그녀를 부르고 있다. 주변에 있는 꼬마 큐피드들은 이 일의 동기가 정욕(情慾)임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일도 칼리스토(Callisto)의 일에 비하면 별로 막장이라고 할 수 없다. 칼리스토는 사냥과 달의 여신이자 처녀신인 디아나(Diana·아르테미스와 동일)를 섬기며 자신도 처녀로 남기로 맹세한 님프였다. 그런데 칼리스토를 찍은 유피테르가 어느 날 자신의 딸이기도 한 디아나의 모습으로 변해 칼리스토에게 접근한 다음, 방심한 그녀를 강제로 범했다. 18세기 프랑스 로코코 미술의 대표자 프랑수아 부셰의 작품(그림 ②)에서 디아나(머리에 초승달 장식을 한 쪽이다)가 저렇게 은근한 태도로 칼리스토를 어루만지는 것은 사실 변신한 유피테르이기 때문이다. 뉴스에 가끔 딸의 친구를 성폭행한 인면수심 아비가 등장해 충격을 주는데 그 원조가 유피테르라고 보면 된다.

 여기에다 유피테르의 아내 유노는 질투심에 불타올라 칼리스토 같은 여인들을 잔인하게 괴롭힌다. 그들이 강제로 당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 바퀴벌레 한 쌍 같은 최고신 부부가 실제 고대 권력층의 모습을 어느 정도 반영했음을 감안하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메타모르포세이스』에는 이런 이야기가 하도 많이 나와 오비디우스의 시대만 해도 성폭력이 아예 범죄도 아니었던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현대와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몹쓸 짓으로 여겨지긴 한 모양이다. 인간 아라크네(Arachne)가 기술과 전쟁의 여신 팔라스(Pallas·아테나의 별칭)를 상대로 베짜기 시합을 했을 때, 그녀가 비난과 조롱의 뜻으로 신들이 동물로 변해 여인들을 납치하거나 범하는 모습을 무늬로 짜 넣은 것을 보면 말이다.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그 솜씨가 “여신이 질투심으로 봐도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탁월했다. 그러자 여신은 “신들의 악행을 수놓은 그 직물을 찢어버렸다.” 아라크네가 신들의 부도덕에 대해 정곡을 찌른 데다 그것을 신을 능가하는 솜씨의 예술로 풍자하자 이중으로 격분한 것이다.

③ 실 잣는 사람들(아라크네의 우화)(1657),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작, 캔버스에 유채, 167×252㎝, 프라도 박물관, 마드리드
 바로크 미술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이 이야기를 화가가 살았던 17세기 에스파냐의 태피스트리(벽걸이 직물) 공방에서 벌어지는 일로 나타내(그림 ③) 신화와 현실을 절묘하게 결합했다. 이 그림의 전경에서는 벨라스케스 당대의 방적공들이 물레로 실을 잣고 뽑은 실을 둥글게 감는다. 그리고 아치 너머 방에서는 그 실을 가지고 신화 속 인물들이 베짜기 시합을 벌인다. 전쟁의 여신답게 갑옷을 입은 팔라스와 아라크네 뒤로 이미 완성된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다. 에우로페가 황소로 변한 유피테르에게 납치되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한 아라크네의 직물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직물 그림이 티치아노의 작품(그림 ①)을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라크네는 결국 분노한 아테나 여신에 의해 거미로 변신해 자자손손 실을 잣는 신세가 되었다. 오비디우스는 그녀의 재주와 오만이 화를 불렀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사실 시합에서 이겼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오비디우스는 마치 큰 소리로는 ‘그러니까 막강한 권력자한테 대들면 안 돼’라고 말하고, 조그만 소리로 ‘하지만 그들이 너희보다 훌륭한 것은 아니야’라고 덧붙이는 것 같다. 아라크네는 자의식 강하고 사회 비판적인 천재 예술가였다. 권력 앞에서도 그 목소리를 죽이지 않다가 결국 희생됐다.

 우리는 아라크네보다는 나은 시대에 살고 있을 것이다. 지하철 형사들은 판사의 명함에도 굴하지 않고 조사를 진행했고 결국 판사는 사직했다. 아라크네 같은 고대인들로부터 이어져온 저항정신이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만든 덕분이다. 그러나 여전히 석연치 않게 흐지부지 끝나는 엘리트 계층의 성폭력 사건이 존재하며, 문제의 판사도 사직 외에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아라크네의 비판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문소영 기자


사랑 타령하다 로마 황제에게 쫓겨난 시인

『메타모르포세이스』 이외에 오비디우스(그림)의 대표작을 뽑아 보면 다음과 같다. 『사랑』 『사랑의 기교』 『사랑의 치료법』 등등. 제목만 봐도 이 로마 시인의 주된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사랑의 기교』는 여자를 유혹하는 기술에 대한 시였는데 덕분에 대대적으로 로마 정화운동을 펼치고 있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눈 밖에 나게 됐다. 나중에 오비디우스는 황제의 명령으로 아예 로마에서 추방됐고 한동안 경박한 시인으로 폄하됐다. 그러나 그의 성의식이 어떻든 그가 인간의 본능적인 관심사에 대해 솔직했던 것과 문체가 유려하고 묘사가 생생한 것은 문인으로서 훌륭한 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많은 후대 작가와 예술가들이 그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http://news.joinsmsn.com/article/779/54747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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