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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길석산 <1> |
그러나 황해도 수안에 갈석산이 없자 『동국여지승람』 수안군 산천(山川)조에 나오는 ‘요동산(遼東山)’을 갈석산이라고 우겼다. 중국의 공식 견해를 대변하는 『중국역사지도집』(사회과학원)은 이에 따라 낙랑군 수성현을 평양 부근에 표기했다. 중국 동북공정과 일제 식민사학은 ‘침략주의’라는 한 란(卵)에서 나온 쌍둥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중국역사지도집』은 갈석산은 황해도가 아니라 하북성 창려현 부근에 표기해 놓았다. 이 한 가지 사실로 ‘한강 이북이 중국의 역사 강역이었다’는 중국 동북공정의 핵심 논리는 파탄났다. 중국은 왜 갈석산을 황해도에 그려놓지 못했을까. 갈석산은 우리로 치면 설악산 정도 되는 유명한 산이어서 일반인도 그 허구성을 쉽게 눈치 채기 때문이다. 아홉 명의 황제가 올라서 구등황제산(九登皇帝山)으로도 불린다. 고조선을 침략하기 전 한무제(漢武帝), 고구려를 침략하기 전 수양제(隋煬帝)·당태종(唐太宗)이 모두 이 산에 올라 전의를 불태웠다. 갈석산이 황해도 수안이라면 이들은 고조선과 고구려를 공격하기 전에 남쪽 황해도를 먼저 방문해 올랐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찌 허망하지 않겠는가. 역사왜곡이란 이렇게 허망한 것이다. 더 허망한 것은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아직껏 정설로 떠받드는 우리 학계 일부의 역사 의식 빈곤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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