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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한국적 리더십 황희 정승: 너그러움, 포용력, 청빈의 대명사

by 아자여 2011.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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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적 리더십 황희 정승: 너그러움, 포용력, 청빈의 대명사

 

 

황희 정승은 조선조에서 60년간 관직에 있으면서 27년을 정승의 자리에,

그 중에 18년을 영의정으로 재직하면서 조선 초기의 사회적인 안정을 이루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청빈과 인간적인 냄새가 풍기는 일화는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 같다.

그의 인간됨, 자신을 내세우지 안혹 청빈과 너그러움으로 한 평생을 산 큰 어른......

 

자기 친손자와 종의 자식이 공 앞에 모여 놀고 있었다.

한 놈은 수염을 당기고 한 놈은 공의 뺨을 두드린다.

붓글씨를 쓰는데 종의 아들이 문서에 오줌을 쌌다.

공은 아무 노여움 없이 그 오줌을 훔쳤다.

정언 벼슬을 하는 이 석형이 방문하여 술상을 준비했다.

배가 고픈 종의 자식이 들어와 안주를 집어 먹었다...

"허허 이놈이 배가 고프구나."

 

집 앞 복숭아나무에 복숭아가 가득 열렸다. 이웃집 꼬마들이 와서 따먹는다.

공은 "다 따먹지 마라. 나도 먹어야지."

온화한 목소리에 꼬마들은 괜찮은 줄 알고 다 따먹었다.

 

소년이 집 앞 배나무에 돌팔매질을 한다. 배가 떨어진다.

큰 소리로 시동을 불렀다. 무서워서 아이들이 숨었다.

그릇에 배를 따 담아서 숨어 있는 아이들에게 가져다주었다.

 

집 마당 구석에서 종 남녀가 서로 희롱을 하였다. 종은 엎드려 사죄를 하였다.

"노비도 하늘이 내린 백성인데 어찌 천성까지 함부로 다스리겠느냐?"

글을 써서 자손만대에 노비를 존중하라고 가훈을 내렸다.

< 내가 종의 인격을 존중해야 종이 나를 존경한다. >

 

장남 호조판서 황치신이 새집을 짓고 만조백관을 초청하여 잔치를 벌렸다.

집안을 살핀 공은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다음 날 아들은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공의 집에 세종이 별안간 방문을 했다.

임금이 공의 방에 들어오셨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정승의 집이니 화문석은 아니라도 장판은 깔렸을 것으로 기대했다.

방바닥에 멍석이 깔려 있었다.

 

세종이 숭유배불(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한다)의 통치이념을 변화하여

배불정책을 완화하려고 하자 성균관의 유생이 권당(捲堂:동맹휴학)을 했다.

유생이 공에게 '소위 정승의 자리에서 임금의 그릇됨을 바로 잡지 못하느냐?' 고

꾸짖자, 공은 '유생의 기개가 나라의 앞날에 큰 빛이 되리라'며 노여움없이 기뻐했다.

훗날 신하들 간의 당쟁 시 세종은 '방촌이 곁에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했다.

 

리더십은 권모술수가 아니라 인간미, 인덕, 인정이 쌓였을 때 리더십이 발휘된다.

- <서경석의 미래희망포럼>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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