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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중앙시평] 강남좌파 대 노동자우파

by 아자여 2011.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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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강남좌파 대 노동자우파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새삼스럽게 세간의 이야기 감이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이른바 강남좌파다. 부자지만 진보적이라고 하는, 계층과 정치 성향의 부조화가 마치 형용 모순처럼 받아들여지면서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있는 것 같다. 내년의 총선·대선을 앞두고 유권자의 성향 변화에 예민해진 정치권의 분위기도 이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한쪽에서는 강남좌파를 두고 시대의 문제를 고민하는 참신하고 선구적인 지식인의 모습을 떠올리고, 또 다른 쪽에서는 서구에서의 캐비어 좌파나 리무진 리버럴과 다를 바 없는 지식인의 자기도취라고 빈정대고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이 현상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쏠리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부자라고 모두 우파이고 가난하면 모두 좌파일까. 만약 강남좌파가 형용 모순처럼 보인다면 노동자우파는 어떨까. 가진 것 많은 부자가 진보적이라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면, 똑같은 이치로 가진 것 없는 노동자가 우파인 것도 이상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영국에서 마거릿 대처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선거에서 압승을 이어가며 장기 집권하는 데는 ‘워킹 클래스 토리(Working Class Tory)’라고 불렸던 노동계급의 지지에 힘입은 바 크다. 말하자면 노동자우파가 영국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서울 지역의 구청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강남 3구와 중랑구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민주당에 패배했다. 겉보기에 역시 강남은 우파의 철옹성처럼 보인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사정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민주당 소속 구청장 후보들은 송파구에서 45%, 서초구에서는 40%, 강남구에서 30%를 각각 득표했다. 2004년 총선을 통해 처음 국회에 진입한 ‘진짜 좌파’인 민주노동당은 정당투표를 기준으로 전국적으로 평균 13%의 득표율을 보였다. 그런데 당시 강남 3구에서도 민주노동당은 9~11%의 득표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과 별 큰 차이가 없는 수치다. 이들을 모두 좌파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들이 보수 진영에서 좌파라고 부르는 정파를 지지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강남좌파라는 용어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한국 정치의 속성에 적지 않은 변화가 발생했음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사실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소득과 계층에 따라 정치 성향이 뚜렷이 구분되게 되었는지 놀랍기까지 하다. 역대 선거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저소득층이 이념적으로 더 보수적이고 전통적으로 한나라당과 같은 보수 정당을 더 많이 지지해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치적 편 가르기의 기준은 역시 출신 지역이었다. 출신 지역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정파적 성향에 대해 ‘거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즉 과거에는 계층보다 지역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강남좌파라는 표현이 전제하는 것은 이제 소득과 계층이 정파적 지지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만큼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경제소득에 따른 계층 간 양극화가 심각하게 진행되어 온 것이다.

 강남좌파 현상이 보여주는 또 다른 특성은 진보적 가치에 대해 이제 드러내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 때의 정치적 논쟁은 뉴라이트와 같은 보수 진영에서 이끌어 갔다. 그러나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이뤄지는 중요한 정치적 논쟁의 주제는 대부분 진보의 어젠다다.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보편-선별 복지 논쟁 등이 그 예가 된다. 이를 두고 보수 진영에서 포퓰리즘으로 비난하지만 중요한 정치 담론이 진보 진영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만큼 먹고사는 일이 어려워진 것이다. 이런 정치적 상황의 변화가 강남좌파라고 커밍아웃할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남좌파 현상을 소수 지식인의 돌출 행동처럼 받아들이려는 일부의 태도는 매우 우려스럽다. 이 현상은 양극화와 함께 생겨난 우리 사회 내부의 심각한 변화와 그에 대한 정치적 반응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 더 하면 시대적으로 진보적 가치가 중요해 진보 진영으로 기운 강남 주민들도 적지 않겠지만 한나라당이 꼴 보기 싫어서 그리로 마음이 간 이들이 오히려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들도 강남좌파라고 부른다면 역설적이게도 강남좌파의 모태(母胎)는 바로 한나라당이 될 것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http://news.joinsmsn.com/article/934/59099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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