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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가을바람 |
조선 초기 문신 서거정(徐居正)은 ‘순채가(蓴菜歌)’라는 시에서 “가을바람 불기를 기다리지 말고 돌아가면 좋으리(不待秋風歸去好)”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호구지책(糊口之策)을 그만두고 낙향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조에는 진(晉)나라 육기(陸機)가 왕무자(王武子)를 방문했을 때 마침 양락(羊酪:타락죽)과 명주인 수곡(數斛)이 앞에 있었다고 전한다. 왕무자가 “경(卿)의 고향 강동(江東)에서는 무엇이 이것과 견줄 만합니까?”라고 묻자 육기는 “순챗국이 있는데 다만 소금과 콩을 넣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진서(晉書)』 ‘육기(陸機)열전’에 따르면 오(吳)나라 출신 육기(陸機)는 계속 벼슬에 연연하다가 진(晉)나라에서 화(禍)를 당해 죽게 되었다. 죽기 직전에야 “화정(華亭)의 학(鶴) 우는 소리를 언제나 다시 들을 수 있겠는가”라고 탄식했다. 그래서 ‘화정의 학’은 화를 당하기 전에 빨리 귀향하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도 “가을바람 불어오면 바로 관직 던지고/월계에서 고깃배 사겠노라 이미 약속했다네(擬待秋風便投劾/越溪曾約買漁舟)”라고 읊었지만 척화파 영수로서 심양까지 끌려가 숱한 고초를 겪고 난 후에야 낙향할 수 있었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는데 이 나라는 낙향바람 대신 정치바람이 거세다. 정치권에 대한 실망 때문이겠지만 가을바람에 순챗국과 농어를 그리워한 옛 선비들은 어떤 느낌일까? 이덕일 역사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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