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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겅·먹거리

[산따라 맛따라] “지리산둘레길 맛집 순례, 변강쇠 되는 지름길”

by 아자여 2011.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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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따라 맛따라] “지리산둘레길 맛집 순례, 변강쇠 되는 지름길”

천하 색녀 옹녀와 천하 색골 변강쇠가 개성 청석관에서 우연히 만나 운우의 정을 나누는데 속궁합이 맞아 같이 살기로 하고 여러 곳을 떠돌다가 결국에는 산으로 들어 가서 살기로 했다. ‘동 금강(東 金剛)은 돌산이라 나무가 없기에 살 수 없고, 북 향산(北 香山)은 찬 곳이라 눈 쌓여 살 수 없지 않은가. 서 구월(西 九月)이 좋다 하나 도적떼들의 소굴이라 살 수 있나, 남 지리(南 智異)는 토후하여 생리에 좋다 하니 그리로 찾아 가세’ 하며 찾아 든 것이 지리산이다. 지리산 중에서도 이들 두 사람이 살았던 곳이 경남 함양 마천으로 고증이 되어 함양을 ‘변강쇠의 고장’이라고 한다.


날씨가 추워진 어느 날 변강쇠는 나무를 하러 나가서 나무 대신 벽송사 입구에 서 있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뽑아다 도끼로 패서 불을 지폈다. 따뜻해진 방 안에서 옹녀와 변강쇠는 놀아 났는데 장승 원귀가 가만히 있지 않고 서울 노량진 우두머리 장승을 찾아 가서 이 사실을 고하니 우두머리 장승은 크게 화가 났다. 그러고는 변강쇠를 응징해서 죽게 했다.


‘가루지기뎐’에 나오는 이야기로 1990년대에는 박동진 명창이 판소리 ’변강쇠전’으로 완창해 세상에 크게 알려졌다.


변강쇠의 땅 마천을 거쳐 지리산을 올랐던 52년 전의 한 산행기록이 있다. 참으로 소중한 자료다. 한국등산사에서 52년 전의 기록이라,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쯤으로 들릴 법하다. 그 시절에 나온 담배가 ‘진달래’와 ‘백양’, ‘탑’이었으니 호랑이도 그 중의 한 가지 담배를 피웠겠다.


단기 4291년(1958년) 1월 대구시내에 본거지를 두고 있던 경북학생산악연맹 적설기 지리산등반대의 기록이 바로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의 기록이다. 마천을 떠난 등반대원 12명은 벽소령을 오르는 길목 너른바위(廣岩)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정예등정조 4명을 선발한다. 젊은 대원 누구는 외동아들이기 때문에 등정조에서 제외시켰고, 등정길에 오르는 것은 바로 죽음의 땅으로 뛰어드는 것과 다름없는 것으로 생각해 등정조는 베이스캠프를 떠날 때 손톱과 머리카락 몇 개를 잘라 남겨 두기까지 했다.

지금 지리산을 오르는 젊은 산꾼들은 믿기 어려울 것이다. 첫날 등정조 4명은 벽소령 아래 어느 목기 움막까지 전진해서 A형 천막을 치고 첫밤을 지낸다. 다음날은 하루종일 전진을 했는데도 고작 벽소령 선비샘까지였다. 적설량 140cm, 기온은 영하 40℃였다. 다음날은 세석평전에서 자야 했다. 벽소령에서 세석평전까지 주능선에는 몸을 날려 보낼 만한 강풍이 하루종일 몰아쳤다. 세석평전에서 정상까지도 하루 만에 오르지 못하고 장터목에서 또 하룻밤을 잔 다음날 겨우 정상 천왕봉을 오를 수 있었다. 지금 지리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하겠지만 이것이 엄연한 사실이고 보면 역시 그 시절에는 호랑이도 담배를 피웠겠다. (조선일보사 발행 <1960년대 한국의 산악운동>에서 발췌)


웅대하고 장엄한 산중의 산 지리산은 해발 1,915m의 천왕봉을 최고봉으로 경남 함양, 산청, 하동과 전북 남원, 전남 구례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있다.


지리산은 1967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봄의 철쭉과 여름 계곡, 가을 단풍과 겨울의 순백 설경은 등산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정상에서의 일출과 일몰은 산행의 절정을 이룬다. 경남 함양과 전북 남원 쪽 지리산 자락을 둘러 봤다.


느티나무산장 
항초심 32년 문호성씨의 마천 사랑 지리산 사랑


지리산 정상을 오르는 수많은 코스 중에서 경남 함양군 마천(馬川)면 강청리(백무동)를 거치는 사람은 산행 외적인 행복 한 가지를 누릴 수 있다. ‘느티나무산장’을 찾아 주인 문호성(文浩成)씨를 만나 지리산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지리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산인지, 지리산에서 사는 삶이 얼마나 값진 삶인지를 느끼게 된다. 느티나무산장에서 계곡의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시간을 엮을 수 있는데 이 분을 만나고 이 분의 삶을 알게 됨은 금상첨화, 얼마나 큰 행운인지 금방 알게 된다.


산장 주인 문호성씨는 항초심(恒初心) 32년 동안 이곳에서 살고 있다. 보통의 경우 대도시로 나가 도시사람이 되는데 문호성씨의 경우는 판이하다. 그는 대도시로 유학, 공부를 하고 깊은 산속 지리산 사람으로 살기 위해 귀향했다. 그리고 탄탄한 직장, 농협에서 일했지만 자신이 가야 할 인생은 안일한 직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만들어야겠다는 그의 소망은 결국 오늘의 성공시대를 열게 되었다는 것이다. 허름한 주거지에서 오직 산사랑 사람사랑 일념으로 손님들을 맞으며 일군 그의 오늘은 그를 알고 있는 오랜 산꾼들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귀감이 되고 있다.


지금의 반듯한 ‘느티나무산장’은 함양에서는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유일한 굿스테이다. 이것은 우연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며 4반세기 동안의 각고의 결실이다. 이러한 결실을 맺는 벅찬 과정에서도 그는 고향을 위해 마천면 애향회를 조직, 지리산 주능선 북쪽의 중요한 사료들을 놓치지 않고 찾아내어 소중한 향토사를 정리했다. 함양군 군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어 공직생활도 했었지만 그것 또한 ‘마이 웨이’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마천산악회장으로 ‘지리산속 가락국 역사탐방로’조성사업에 도전하겠다는 강한 뜻을 내비쳤다. 산꾼들이 먹고 잘 수 있는 식당과 숙박시설을 마련해 놓았다. 식당은 착하디 착한 부인 조귀자(曺貴子) 여사가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


메뉴  산채비빔밥 6,000원. 토종돼지삼겹살 1만원. 토종닭백숙, 송어회 각 4만원
전화번호   [느티나무산장] 055-962-5345
찾아가는 길  경남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백무동) 169-3


칠선휴게소
강정요리 옻닭백숙에 복분자술


가락국(駕洛國-金官伽倻. 427~562)의 제10대 구형왕(仇衡王)은 521년(신라 법흥왕 8년)에 즉위, 재위 42년 만인 562년(신라 진흥왕 23년) 신라군의 공격을 받고 항복함으로써 가락국 최후의 왕으로 기록이 되었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지리산 칠선계곡에는 멸망한 가락국의 사적들이 남아 있다. ‘대궐터’, ‘국골(國谷)’ 등의 지명이 이 사적들의 흔적이고 능선 너머 산청 땅에는 돌무덤으로 된 구형왕릉이 있다.


마천산악회(회장 문호성) 회원들은 이 사적지들을 정리, ‘지리산속 가락국 역사탐방로’를 조성해 많은 사람들이 찾도록 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었다. 문호성 회장과 이 사적지에서 지척의 거리에 위치한 ‘칠선휴게소’의 허상옥 대표는 이 탐방로 조성에 강한 의욕을 갖고 있는 분이다. 마천산악회의 등반대장이기도 한 이 곳 토박이인 허상옥씨(50)는 골수 산꾼으로 이미 전국 각지의 많은 산꾼들과 돈후한 우정을 쌓아 왔고 산행 안내역도 즐겨 맡아 오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 일행이 칠선휴게소를 찾았던 날도 궂은 비를 맞으며 외지에서 온 산꾼들을 비선담까지 안내하고 돌아온 바로 직후였다. 우리 일행이 식탁에 앉자 부인 양인숙씨는 얼른 옻닭백숙 상차림을 해 내었다. 우리 일행은 자연스럽게 변강쇠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변강쇠는 지리산에서 무엇을 즐겨 먹었을까” 하는 데 화제가 모아졌다. 뭇 호색가들이 선망(?)하는 ‘남성’ 변강쇠의 그 힘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결코 먹거리와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지리산에서 나는 모든 먹거리는 강정(强精)에 효험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한바탕 즐겁게 웃었다. 허상옥씨는 자신의 집 ‘칠선휴게소’에서 차려내는 옻닭백숙이야말로 최고의 강정요리라고 자임했다. 옻닭요리는 사람의 오장육부를 튼튼하게 하는 식품이라 ‘남근(男根)’까지 힘차게 만들 것임에야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라며 좌중을 즐겁게 했다. 그러면서 옻닭을 끓이는 ‘마천옻’은 전국적으로 최상의 옻으로 알려져 있고, 바로 마천의 아버지 세대에서는 마천옻 한 봇짐 메고 나가면 큰 돈을 벌어서 돌아오기도 했다는 실화를 들려 주었다.


마천옻이 산간지역인 강원도를 위시, 바다 건너 제주도까지 팔려 나갔다니 그 명성은 알 만했다. 그리고 식탁에 올라 온 술은 ‘주몽’과 ‘황진이’였다. ‘주몽’은 16도짜리 복분자술이고 ‘황진이’는 13도짜리 청주다. 전에는 ‘강쇠’를 내어 놓았는데 지금은 강쇠를 주조하던 같은 회사에서 강쇠를 업그레이드한 ‘황진이’를 내어 놓고 있다고 했다. 칠선계곡 물소리는 우렁찬데 변강쇠에 강정의 술인 복분자술 ‘주몽’과 ‘강쇠’, ‘황진이’라. 삼박자 사박자가 척척 맞아 들어가며 우리 일행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자연보호마천면협의회 회장 출신인 허상옥씨는 매우 엉뚱(?)하게도 “변강쇠는 철저한 자연보호운동가였다”는 발언을 했다. 의아해하는 우리 일행에게 “변강쇠는 땔감으로 살아 있는 나무를 해칠 수 없었기에 ‘죽은 나무’로 자기에게는 쓸모가 없는 장승들을 뽑아다가 땔감을 했었다”는 그럴듯한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변강쇠는 참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주장으로 일행을 한바탕 더 크게 웃게 만들었다.


메뉴  산채비빔밥 6,000원. 옻닭 4만원.
전화번호  [칠선휴게소] 055-962-5494
찾아가는 길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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