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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장마 |
중국에서는 지금의 사천(四川)성 서쪽을 뜻하는 서촉(西蜀) 지방이 비가 많이 오므로 촉우(蜀雨)라는 말도 있다. 두보는 ‘중간왕명부(重簡王明府)’라는 시에서 ‘강구름은 어느 밤에야 다하며/촉천의 비는 언제나 개려나(江雲何夜盡/蜀雨幾時乾)’라고 읊었다. 재해(災害) 수준의 장마를 괴로운 비란 뜻에서 고우(苦雨)라고도 한다. 조선 초기 문신 서거정(徐居正)의 ‘고우를 탄식함〔苦雨嘆〕’이란 시는 “고우를 탄식하고, 고우를 탄식하노라/내 고우를 탄식하노니 언제나 그치려나(苦雨嘆苦雨嘆/我嘆苦雨何時乾)”라고 시작한다. 그의 시는 “헛되이 가슴을 쳐댄들 얻는 것이 무엇이리오/새벽닭은 울지 않고 다시 비만 내리는데(空搥胸何可得/晨鷄無聲雨復作)”라고 끝난다. 다산 정약용도 ‘고우행(苦雨行)’이란 시에서 “괴로운 비, 괴로운 비, 쉬지 않고 내리는 비/아궁이 불 꺼져 동네 사람 시름 많네/아궁문에 물이 한 자 깊게 고였는데/어린아이 돌아와선 풀잎 배를 띄우네(苦雨苦雨雨不休/煙火欲絶巷人愁/竈門水生深一尺/穉子還來汎芥舟)”라고 노래했다. 음(霪)자와 림(霖)자는 모두 장마라는 뜻이어서 장마를 음림(霪霖), 음우(霪雨)라고도 한다. 고려 말의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장맛비(霪雨)’란 시에서 “삼복이 가까움을 미리 걱정하지만/새로 올 가을도 마땅히 기다려야지(預憂三伏近/應待九秋新)”라고 노래했다. 장마가 끝나면 삼복이 온다는 사실도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삼복 뒤의 가을까지 내다보는 혜안이 놀랍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것이 선조들의 자연관이자 인간관이었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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