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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겅·먹거리

[J 스페셜-목요문화산책] 일등항해사 스타벅, 커피광이라고?

by 아자여 2011.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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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목요문화산책] 일등항해사 스타벅, 커피광이라고?
그림 ① 고래잡이 배 (1845·부분), 조셉 맬러드 윌리엄 터너(1775~1851)작, 캔버스에 유채, 91.8 x 122.6cm,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울프 컬렉션, 뉴욕

스타벅스 커피의 이름은 미국 소설 『백경(白鯨)』(원제:모비딕·Moby Dick·1851년)에 등장하는 1등 항해사 스타벅(Starbuck)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미국과 한국의 어떤 매체들은 “소설 속 스타벅이 커피를 너무 좋아해서 그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그런데 전자는 스타벅스 커피가 밝힌 사실이지만, 후자는 누가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틀린 설명이다. 『백경』 어디에도 스타벅이 커피광(狂)이라는 언급은커녕 그가 커피를 마시는 장면조차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학교 필독서로 읽곤 하는 미국에서조차 스타벅이 커피를 즐겼다는 말을 믿어버리는 사람이 많다. 왜 그런 것일까.

 일단 허먼 멜빌(Herman Melville·1819~91)의 원작이 방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精讀)하기도 힘들고, 꼼꼼히 기억하기는 더 힘든 게 한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흰 고래 모비딕을 광적으로 추격하는 에이햅(Ahab) 선장이 술도 아닌 커피를 즐긴다고 하면 모두 의심하겠지만, 에이햅에 맞서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성격의 항해사 스타벅이 커피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이다.

 『백경』이 방대하다고 해서 줄거리가 복잡한 것은 아니다. 포경선 피쿼드호(號)의 선장 에이햅은 지난 항해에서 거대하고 새하얀 고래 모비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었다. 에이햅은 그 신비롭고 무시무시한 고래를 찾아 잡겠다는 일념으로 대서양·인도양·태평양으로 항해를 계속한다. 스타벅이 “짐승을 상대로 복수를 하다니 미친 짓”이라고 만류하지만 아랑곳없다. 마침내 일본 근해에서 모비딕을 발견해 사투를 벌인다. 그러다 사흘째 되는 날, 에이햅은 모비딕의 눈에 작살을 꽂지만 고래와 함께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그 와중에 피쿼드호도 침몰하고 스타벅을 포함한 선원들도 함께 최후를 맞는다.

 그러나 이 단순한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백경』은 그리 쉽고 빠르게 읽히지 않는다. 작품 전체가 상징적인 면이 강하고 그 상징이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에이햅이 인간의 도전정신과 불굴의 의지를 표상하는 비극적 영웅이며, 모비딕은 그것을 좌절시키는 냉혹한 세계, 또는 원천적인 악(惡)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에, 누군가는 그 하얀 고래가 신 혹은 자연의 섭리를 상징하며, 에이햅은 오만과 광포한 열정으로 그것에 도전해 자신뿐 아니라 모든 선원을 파멸로 이끌어가는 타락천사 루시퍼(Lucifer)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소설에는 그 엇갈린 견해들을 모두 뒷받침하는 시(詩)적이고 철학적인 대화와 독백이 가득하다.

 또 가장 중요한 두 인물인 에이햅과 스타벅의 관계도 단순하지 않다. 그들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존경한다. 스타벅은 에이햅이 광인(狂人)이지만 자신의 “영혼 밑바닥을 찌르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고, 에이햅은 스타벅이 진정으로 “신중한 용감성”을 지닌 자라고 평한다.

그림 ② 안드로메다를 구하러 내려오는 페르세우스(1729), 윌리엄 호가스(1697~1764)작, 판화 일러스트레이션
 이런 점들로 인해 『백경』은 출간 당시 ‘해양 모험 소설 치고 따분한 소설’로 외면받았다가 지금은 세계적 고전의 반열에 올라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루한 면이 없다고는 못하리라. 특히 줄거리와 직접 상관없는 고래학, 포경 법규 등의 이야기가 중간중간 별도의 챕터로 튀어나오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책을 정독할 의지를 상실하고 스타벅 커피광 설의 진위를 확인할 엄두도 못 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챕터 중에도 재미있는 것이 있다. 종래의 고래 그림들을 신랄하게 평가하는 55장과 56장 말이다. 여기에서 멜빌은 18세기 영국의 유명 화가 윌리엄 호가스의 ‘안드로메다를 구출하러 내려오는 페르세우스’(그림 ①)에 나오는 바다 괴물이 고래를 묘사한 것이라고 단정하고 그 어설픈 묘사를 비웃는다.

 만약 멜빌이 『백경』을 출간하기 전에 영국 최대 화가로 불리는 낭만주의 풍경화가 조셉 MW 터너의 ‘고래잡이 배’(그림 ②)를 봤다면 소설 속에서 호의적으로 언급했으리라. 이 그림에서 고래는 머리 부분만 수면 위로 드러나 있다. 멜빌이 “살아있는 고래의 위풍당당하고 의미심장한 모습은 오직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 속에서만 볼 수 있다. 떠올랐을 때 그 거대한 몸 대부분은 시야 밖에 있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이 그림 속 고래는 비록 단순한 검은 덩어리로 보이지만 육중한 무게와 무서운 역동성이 느껴진다. 그 힘으로 검은 물보라와 높은 파도를 일으켜 작살잡이들의 보트가 거의 수직으로 솟아오르게 만들면서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것이다.

그림 ③ 왓슨과 상어(1778), 존 싱글턴 코플리(1738~1815)작, 캔버스에 유채, 182.1 x 229.7cm, 국립미술관, 워싱턴 DC


 미술에 대한 멜빌의 조예는 그밖에 『백경』 여기저기에 나타난다. 소설 중에 포경선 선원들이 배에 매단 고래 사체에 올라가 고기를 자르는 작업을 하면서 상어 떼의 위협을 받는 장면이 있다. 『백경』 연구가들에 따르면, 이 장면은 미국 화가 존 싱글턴 코플리의 ‘왓슨과 상어’(그림 ③)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추측된다.

 이 그림은 18세기 중엽 브룩 왓슨이라는 14세의 어린 선원이 바다에서 헤엄치다 상어의 습격을 받은 사건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소년의 한쪽 다리는 이미 무릎 아래가 상어에게 물어뜯겨 사라진 상태다. 상어는 다시 그를 향해 돌진하고 있고 보트에 탄 동료 선원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들이 먼저 소년을 끌어올릴 것인지, 상어가 먼저 소년의 머리를 덥석 물 것인지, 혹은 작살이 먼저 상어를 꿰뚫을 것인지,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는 순간이다. 과연 소년은 어떻게 됐을까. 사실 이 그림을 주문한 것이 바로 왓슨이었다. 그는 결국 구출된 것이다. 의족을 달아야 했지만 건강도 되찾았고, 나중에 상인과 정치가로 성공했다고 한다.

 이 밖에 『백경』에는 고래 꼬리의 힘찬 아름다움을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의 강건한 작품에 빗대는 등 고래와 바다의 묘사가 미학적인 것이 많다. 그래서 아무리 방대해도 한번 끝까지 정독해볼 만한 소설이다. 스타벅 커피광 설의 진위도 직접 확인할 겸 말이다. 참고로 스타벅스 커피가 스타벅의 이름을 딴 진짜 이유는 초창기 창업주 중 『백경』의 팬이 있었고, 또 본거지인 시애틀의 항구도시로서의 성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였다고 한다.

문소영 기자

멜빌, 고래잡이 배 타다 ‘식인종 마을’ 머물기도

소설 『백경』이 고래잡이 과정과 포경선에서의 일상을 생생하고 정교하게 묘사한 것을 보면 작가인 멜빌(사진) 자신이 포경선 경험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20대 초반에 여러 포경선을 탔는데, 그 와중에 몇 달간 남태평양 식인(食人) 원주민 마을에서 지내기도 했다. 『백경』에서 화자인 ‘나’와 우정을 나누는, 거칠지만 고결한 성품을 지닌 식인종 출신 작살잡이 퀘이퀘그(Queequeg)는 이때의 경험에서 나온 캐릭터다. 멜빌은 나중에는 군함에서 일하기도 했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얀 재킷』을 썼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상징적 구성과 시적인 대화 등으로 인간 보편의 철학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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