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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겅·먹거리

배 속 100조 마리 세균 소화·면역 돕지만 때론 암 부르기도

by 아자여 2011.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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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속 100조 마리 세균 소화·면역 돕지만 때론 암 부르기도
100조(兆) 개가 넘는 세포로 이뤄진 사람의 몸. 하지만 그보다 열 배나 되는 세균(박테리아)이 구석구석에 붙어살고 있다. 사람의 배 속에 사는 장내(腸內) 세균만 해도 전체적으로 1000여 종(種), 개인별로는 평균 160여 종에 100조 마리나 된다. 장내 세균은 소화를 돕고 병원균 침입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암이나 다발성경화증 같은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체질을 결정한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때로는 좋은 듯, 때로는 해로운 듯 보이는 장내 세균의 정체를 살펴본다.



동물의 대장 속에 세균 덩어리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몸 안에 세균이 전혀 없는 무균(無菌) 상태의 초파리를 인공적으로 길러보면 보통 초파리보다 수명이 30% 정도 짧다. 또 무균 생쥐도 음식과 물을 30%나 더 먹고 마신다. 세균이 없으면 고열량 식품의 소화가 어려워지고 창자에서 물을 흡수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달 초 서울대 생명과학부 이원재 교수 등은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논문을 한 편 실었다. 장내 세균이 초파리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한 내용이다. 무균 상태의 초파리 유충은 성장을 못해 세균이 붙어 있는 보통 유충에 비해 크기가 훨씬 작은데, 연구팀이 무균 유충에 아세토박터 포모룸(Acetobacter pomorum)이란 세균을 먹이자 제대로 성장했다.

 이 교수는 “이 세균이 알코올을 먹이로 이용하는 과정에서 내놓는 어떤 물질이 초파리 장(腸)의 줄기세포 분화를 촉진하고, 인슐린(또는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의 신호체계를 활성화함으로써 초파리 유충의 혈당 조절과 성장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내 구균. 공 모양처럼 생겼으며 식중독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장내 세균은 동물의 면역체계도 훈련시킨다. 면역계를 늘 긴장하게 만들어 외부에서 병원균이 들어왔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동물의 뇌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5월 사이언스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미국 뉴욕주 세이지대의 도로시 매슈스 박사는 생쥐에게 미코박테리움 바카이(Mycobacterium vaccae)라는 세균을 먹인 결과 미로(迷路)의 출구를 빨리 찾고 불안한 행동도 덜 보였다는 실험 결과를 미국 미생물학회에 보고했다. 세균이 신경세포를 자극해 뇌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분비를 증가시켜 학습능력을 높였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장내 세균인 대장균. 장출혈성 대장염을 일으키는 변종도 있다.
 지난 8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아일랜드 연구팀이 락토바실루스 람노수스(Lactobacillus rhamnosus)라는 세균을 생쥐에게 먹인 결과 스트레스도 덜 받고, 뇌의 신경전달물질 수용체 숫자도 늘어났다. 뇌의 활동이 활발해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장내 세균이 유익한 것만은 아니다. 지난달 18일 미국 언론들은 미국·캐나다 연구진이 사람의 대장암 조직에서 푸소박테리움(Fusobacterium)이란 세균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장내에서 가끔 발견되는 이 세균은 궤양성 대장염을 일으키는데, 연구팀은 이 세균이 대장염을 통해 정상 세포를 암 세포로 전환시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는 위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위에서 발견되며 위암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장내 세균은 다발성경화증도 일으키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발성경화증은 뇌와 척수의 신경섬유 주위 보호막인 미엘린이 파괴되는 병으로 운동마비·언어장애·의식장애 등의 증세를 일으킨다. 지난달 28일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독일 막스플랑크 신경생물학 연구소 연구팀이 다발성경화증을 나타내도록 생쥐의 유전자를 조작했으나 무균 생쥐에게서는 이 병이 발생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다발성경화증이 나타나는 것은 장내 세균이 생쥐의 몸에서 자기면역반응이 일어나도록 유도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자기면역반응은 생쥐의 면역세포가 자기 몸의 세포를 적(병원균)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장내 세균이 적이 될지, 친구가 될지는 미묘한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100조 마리에 이르는 장내 세균 중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이 전체의 0.000001%라고 해도 100만 마리나 되는 셈이다. 스트레스나 항생제 사용 등 사람과 세균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 깨지는 순간 병원균이 삽시간에 수십억 마리로 증가해 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장내에 서 다른 세균에 눌려 지내던 병원균이 항생제 사용으로 인해 상황이 바뀌면 갑작스럽게 증식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세균=원기둥·공·스프링 모양을 가진 단세포 생물로 크기는 보통 0.5~5㎛(마이크로미터·1㎛는 1000분의 1㎜) 정도다. 대부분 외부에서 영양분을 흡수해 성장하며, 한 개의 세포가 두 개로 나뉘는 이분법으로 증식한다. DNA를 둘러싸는 핵이 없어 원핵생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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