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밥은 동쪽 집에서 먹고, 잠은 서쪽 집에서 잔다는 ‘동가식서가숙’이란 말이
나온 배경은 이렇습니다.
중국의 대표적인 백과전서 중에 하나인 《태평어람(太平御覽)》에는 동가식
서가숙이란 어원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산동성의 옛 지명인 제(齊)나라에 어떤 처녀가 있었답니다.
인물도 좋고 집안도 좋은 그 처녀에게 어느 날 두 집안에서 청혼이 들어왔는데,
동쪽집의 신랑감은 인물은 볼 것이 없으나 부잣집 아들이었고,
서쪽집의 신랑감은 인물은 뛰어나지만 집안은 볼 것 없는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인물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부를 선택할 것인가?
처녀의 부모는 처녀에게 뜻을 물었고 처녀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밥은 동쪽 집에서 먹고 잠은 서쪽 집에서 자면 안 되나요?.”
일명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의 이란 말이 나온 부분인데요.
집안 좋은 총각과 낮 생활을 같이하며 부를 누리고,
얼굴 잘 생긴 총각과는 밤 생활을 같이 하며 사랑을 즐기고 싶다는 대답이었죠.
이런 실리적인 생각은 옛날 일만은 아닌 듯싶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하면 동가식서가숙의 대답을 뺨치고 있습니다.
결혼 전에 연애는 마음에 들고 잘생긴 사람과 하다가,
결혼은 부모님의 정해 주신 유능한 사람과 하고 싶다는 대답 말입니다.
어쩌면 현실적이고 똑똑한 대답 같기도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씁쓸해지는
대목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낌없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택하겠다는
어딘가 젊은이다운 패기가 느껴지는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것.
너무 감상적인 생각인가요?
조선시대 수필집 <한거만록(閑居漫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태조(太祖)가 개국한 다음 조정에서 재신(宰臣)들을 불러 정부(政府)에서 주연을 베풀었습니다.
한 때는 고려왕조에 충성을 맹서했던 대신들이었지만
새로운 정권에 동조하며 새로운 지위를 약속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연회에는 설매(雪梅)라는 기생이 있었습니다.
그 기생은 뛰어난 미모 덕에 많은 사내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기생 역시 어느 사내든 마다 않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여인이었습니다.
연회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어떤 늙은 정승이 술이 취해서 설매(雪梅)라는 기생에게
치근대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아침에는 동가식(東家食)하고 저녁에는 서가숙(西家宿)하는 기생이니
오늘 밤에는 이 늙은이의 수청을 드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러자 설매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동가식서가숙하는 천한 기생이, 어제는 왕 씨를 모시다가 오늘은 이 씨를 모시는
정승 어른을 모시는 것이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늙은 정승은 얼굴은 벌게지고 고개를 들지 못하였고,
어느 대신은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난날 주군을 버리고 새로운 주군을 모시는 대신들이
기생의 가슴을 찌르는 한 마디 말에 모두 맥을 못 추었던 것이죠.
(박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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