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을도 연례행사처럼 설악을 찾았다. 이번 주 지나면 산 아래 부분만 빼고 설악산 가을단풍도 끝물이라 서둘러 다녀왔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공룡능선을 탈려면 새벽 3시경에 설악탐방지원소를 출발했는데 올해는 유난스럽게도 2시에서 2시30분에 출발한다. 보통 놀멍쉬멍 넘어 돌아오면 12시간에서 13시간 정도 소요된다. 코로나 펜데믹에서 해방되자 억눌렸던 여행욕구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와 토요일과 일요일 및 공휴일은 차량과 여행객들로 넘쳐난다. 일찍 출발하고 일찍 귀경하는 진풍경들로 전국 고속도로와 국도는 거대한 주차장을 연출한다. 목요일 밤 11시 30분에 출발하여 금요일 02시 30분에 설악동 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데 벌써 많은 차들이 주차장에 즐비하다. 여기 저기 산행준비를 하는 등산객이 눈에 띈다. 산악회 동호회도 요즘은 장거리 산행은 토요무박보다 금요무박을 선호하는 편이다. 당일 주차비가 11,000원이다. 언제부터인지 5,500원에서 2배로 기습적으로 올렸다. 한마디로 탐방객들에 대한 갑질이고 행패다. 오색지구는 무료 또는 전용 건물주차장은 5,500원을 받는다. 여기에다가 입장료 4,500원을 더하면 국립공원안에 들어설려면 15,500원을 그냥 강탈당하는 기분이다.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이 따로 없다. 말이 국립공원이지 탐방객들의 불만과는 전혀 아랑곳 없다. 나도 서둘러 산행채비를 한다. 가지고 간 보온병의 뜨거운 물로 커피 한잔 마시고 출발준비를 마친다.
03시 정각 입산 시작. 오늘 산행거리는 총 27키로, 산행시간은 11시간 30분으로 정하고 어둠이 깔린 설악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배낭이 제법 묵직하다. 보온패딩 그리고 장거리 산행에 필요한 식수와 부식품들로 35키로 배낭이 빵빵하다. 산행근육과 자전거근육은 또 다른 모양이다. 오랫동안 장거리산행을 하지 않아 내심 걱정도 앞서 체력안배를 고려하면서 걷는다. 비선대까지는 그래도 산책길 정도 수준이라 빠른 걸음으로 내달린다. 여유있게 비선대 도착. 어둠속에서 본격적으로 등산로가 시작됨을 알리는 조명등 불빛이 머리 위에 비친다. 초반 첫걸음부터 급경사 깔닥고개다. 우선 자켓을 벗어 배낭 속에 챙겨 넣고 긴팔티만 한장 달랑 걸친채 올라간다. 천천히 호흡을 조절해 가며 한계단 한계단 해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올라간다. 드디어 금강굴 이정표 갈림길에 다다랐다. 들렀다가 갈까 아님 곧바로 진행할까 잠깐 망설인다. 금강굴까지는 깍아지른 급경사 돌계단과 철계단길로 200여 미터를 올라야 한다. 지금은 캄캄한 밤이라 겁없는 등산객들도 꺼리는 시간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고요하고 적막한 시간에 깍아지른 절벽에 자리잡고 있는 금강굴로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싶은 욕심에 감히 올라선다. 주 등로에서 이탈하여 험로를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레 오른다.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제법 한참 올라간다. 드디어 금강굴에 도착한다. 금강굴은 비선대 서쪽에 솟은 미륵봉 중턱 해발 600미터에 있는 자연석굴로서 7평쯤 되며, 깊이 18m로 신라시대의 고승 원효(元曉)가 수도한 곳으로 지금은 신흥사(神興寺)의 부속 암자이다. 금강이라는 이름은 원효대사의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머리 위엔 차가운 달빛이 구름 사이에 흐르고 주위는 깊은 어둠에 묻혀 고요하고 적막하다. 오른편 바위틈에서 신비스런 약수물이 졸졸졸 흘러 나온다. 배낭을 내려놓고 업드려 합장 삼배를 올린다. 그 누구를 위한 간절한 소망을 빌어본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다시 주 등로로 돌아와 돌계단길을 다시 올라간다. 가끔씩 등로 옆에서 가픈 숨을 내쉬며 힘겹게 올라가는 등산객들을 지나치며 오른다. 이윽고 비선대 정상을 우측에 둔 능선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마등령까지 부지런히 걸어 늦어도 06시 30까지 가야 한다. 멋진 일출을 보기 위해. 그동안 참 많이도 이 능선길을 올랐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일출은 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잔뜩 기대감을 가지고 쉬지 않고 부지런히 올라간다. 마등령까지는 조망은 별로지만 공룡을 넘어가기 위한 준비운동 구간이라 생각하고 체력안배를 해야한다. 이 구간을 무리하게 걸어 무릅관절이나 발목관절을 상해 오르내림이 심한 긴 공룡구간에서 낭패를 보는 사람들이 보기보다 많이 발생한다. 체력에 자신없는 사람들은 자주 쉬어가고 틈 나는대로 수분보충을 해가면서 근육에 쥐가 발생하는 것을 미리 예방해야 한다.
06시 20분 마등령 올라서는 마지막 나무계단에 도착. 배낭을 내려놓고 동해의 붉게 타오르는 일출 전 여명을 바라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바다와 산은 한폭의 진경산수화다. 이윽고 해가 머리를 서서히 내밀고 올라온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일출을 드디어 맞이한다. 참 아름답고 황홀하다. 오늘 설악에 온 것은 행운이다. 금강굴에서 부처님이 소원을 들어주신걸까 멋진 일출까지 선물로 준비하여 주심은.
마등령 삼거리의 새벽공기는 차갑다. 땀이 식어 체온이 떨어진다. 배낭 속에 말아둔 자켓을 다시 꺼내 입고 공룡을 넘어가기 전 간단한 아침식사를 한다. 사과 한개 그리고 아크로와상 빵 한조각에 이온음료 몇 모금이 전부다. 정상부 능선 주변의 단풍은 이미 끝물이다. 며칠 전 심한 비바람으로 모두 시들었다.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할 때 중산간지역 예쁜 단풍을 기대하면서 드디어 공룡으로 올라선다. 이제 어둠이 물러가고 주위가 훤하게 밝았다. 저 멀리 서북능선 위로는 안산, 키자랑하다 대청봉에게 귀싸대기 얻어맞은 귀때기청봉, 중청, 대청 그리고 권금성으로 길게 이어내린 화채능선 등 모두 시야에 들어온다. 동해바닷쪽으로 눈을 돌리면 제일 먼저 울산바위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다가오고 목우재로 뻗어가는 능선 끝자락에 우뚝 쏟아 있는 달마봉, 좌측으로 저 멀리 신선봉, 황철봉 등 모든 산군들이 장관이다. 천불동계곡을 둘러싼 수 많은 기암과석과 봉우리들은 더할나위 없는 압권의 절경을 소리소문 없이 뽐내고 있다. 어떤이들은 설악산이 금강산보다 오히려 더 아름답다고들 한다. 웅장한 면과 수려한 아름다움을 모두 다 간직하고 있어서. 공룡의 등을 타고 주변 봉우리들의 아름다운 자태를 마음껏 구경하면서 힘든 줄 모르고 올라가고 내려간다. 설악산에서 최고의 등산코스는 역시 공룡능선이다. 체력만 된다면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사계절 저마다 진풍경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 공룡능선의 마지막 봉우리 신선대가 저 멀리 시야에 들어온다. 깊게 내려가고 높게 올라서고 아기자기하게 바위틈을 돌아가고 마치 한폭의 동양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간다.
이제 공룡의 마지막 봉우리 신선대로 올라선다. 신선대에서 바라보는 설악산의 뷰는 황홀 그 자체다. 여기에서 제일 많은 인생샷 사진을 담는다. 마등령에서 출발하면 끝봉우리이지만 오색이나 한계령에서 출발하면 공룡의 첫봉우리로 제일 먼저 공룡의 황홀한 전경을 만나는 곳이다. 첫 탄성은 한결같다. 이야아~ 멋지다. 정말 끝내준다. 넘 아름답다. 몇장의 조망을 담은 후 점심겸 간식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다. 이제부터 긴 하산길로 접어든다.
희운각으로 내려간다. 희운각에서 신선대로 올라오는 등산객들을 스쳐 지나면서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간단한 인사말을 남긴다. 희운각을 바로 앞에 두고 무너미고개 이정표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한다. 무너미고개 이름은 물넘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이 고개에서 빗물이 천불동계곡으로 떨어지면 동해로 흘러가고 반대로 떨어지면 서해로 흘러간다. 그래서 물이 넘어가는 물넘이고개가 무너미고개로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천불동계곡으로 내려서자 나뭇닢 빛깔이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가을빛이 완연하다. 노오란빛 붉은빛이 어울리게 섞여있다. 계곡에도 제법 많은 물이 시원하게 흘러 내린다. 물소리가 가을빛을 만나 더욱 맑고 청명하여 귀를 행복하게 한다. 내려오는 동안 연신 스마트폰으로 가을풍경을 담아내기에 바쁘다. 카메라에 담긴 풍경보다. 실물이 훨씬 아름답고 멋지다. 올라올 때보다 하산길은 훨씬 여유롭다. 동호회에서 온 등산객들은 하산시간 맞추느라 허겁지겁 바쁘게 내려간다. 나처럼 자가로 온 사람들은 게으른 하산으로 주변을 즐기고 더런 물가에 여장을 풀고 설악의 맑고 차가운 물에 주인을 잘못 만나 잔뜩 고생한 발도 식혀주고 있다. 가을 산들바람에 아예 바위에 태평스럽게 누워 평화스럽게 오수를 즐기는 사람도 눈에 띈다. 나도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찾아 배낭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는다. 차가운 계곡수에 발도 담그고 시원한 물에 머리도 흠뻑 적셔본다. 몸과 마음이 텅 비어 공간이 된다. 한 반시간 정도 쉬어간다. 오늘 제법 걸었는데도 그렇게 피곤하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배낭에 남아있는 간식거리 몇개 정리하고 비선대로 내려간다. 공룡능선은 이제 내년 봄 화사한 날에 다시 찿기로 기약한다. 오른쪽 계곡을 끼고 가을빛을 따라 유유자적 하산. 비선대는 금요일인데도 가을단풍을 보러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소공원 탐방소에 도착. 오늘 산행시간은 총12시간 소요. 금강굴 들런 시간과 쉬어간 시간 등을 고려하면 제법 빨랐던 편이다. 주차장에서 커피한잔으로 산행 마무리하고 애마로 귀경길에 오른다.
▼ 설악동 탐방소 입구
▼비선대 삼거리 : 우측 금강굴 방향으로 올라감
▼금강굴 방향 팻말
▼금강굴 내부 삼존불
▼입구 염불좌
설악산 장군봉과 금강굴 (사진 퍼옴)
▼동해바다 일출 전 여명
▼일출 시작
▼마등령에서 바라본 일출의 아름다운 광경
▼저 멀리 대청봉과 소청봉
▼킹콩바위
▼울산바위
▼천당폭포
▼알레르기로 호흡곤란이 생긴 어느 등산객을 구조하는 헬기
▼비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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