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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중앙시평] 소금을 지니고 화목하라

by 아자여 2012.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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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소금을 지니고 화목하라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독립은 뜻밖에도 소금에서 나왔다. 간디가 이끈 소금행진이 인도 독립투쟁의 기폭제가 된 역사적 사실을 지적하는 뜻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소금 같은 간디의 인격, 그 고결한 성품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인도의 모든 염전을 강탈해 소금의 생산·판매권을 독점한 영국은 인도의 바닷물과 인도의 노동력으로 생산된 소금을 인도인들에게 비싼 값으로 되팔아 막대한 이익을 착취했을 뿐 아니라, 무거운 소금세를 부과해 식민지 인도를 철저히 수탈했다.

 맨주먹의 평화적 시위로 일제(日帝)에 항거한 우리 민족의 3·1독립항쟁에 큰 감명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는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변호사는 마침내 소금세 폐지 투쟁에 나선다. 1930년 3월 12일 간디는 70여 명의 동지와 함께 역사적인 소금행진의 첫발을 내딛는다. 아메다바드를 떠나 장장 360㎞를 맨발로 걷는 동안 영국 경찰의 곤봉세례를 무수히 받고 기마대의 말발굽에 짓밟혔지만, 수천 명으로 불어난 행렬은 피를 흘리고 쓰러지면서도 멈출 줄 몰랐다. 소금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주의의 불의에 맞서는 강력한 무기였다.

 행진 24일째인 4월 6일 새벽, 단디 해변에 도착한 간디가 염전 바닥에서 한 움큼의 볕소금을 건져 올리자 그 뒤를 이어 수천의 손길들이 다투듯 소금을 집어 들었다. 비록 한줌씩에 불과한 소금가루였으나, 그 작은 가루에 담긴 힘은 총칼보다 더 강했다. 그 후 인도의 모든 해변은 인도인들 자신의 소금 생산장으로 돌아온다.

 영국 배우 벤 킹슬리가 주연한 영화 ‘간디’는 소금행진의 처절한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앞줄이 영국 경찰의 철제 곤봉에 맞아 쓰러지면 뒷줄이 그 자리를 메우면서 파도처럼 끝도 없이 이어가던 무저항의 행렬…, 그 핏빛 소금밭에서 정작 두려움을 느낀 쪽은 비(非)문명의 간디 일행이 아니라 문명의 강국, 광기 서린 대영제국의 진압경찰이었다.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 투쟁을 사티아그라하(satyagraha)라고 부른다. ‘진실에 대한 확신’이라는 뜻이다. 사티아그라하는 증오의 불길로 타오르는 무력투쟁이 아니라 마음을 녹여 감화(感化)시키는 영혼의 절규였지만, 결코 무기력한 싸움이 아니었다. 역사상 그처럼 강력한 투혼(鬪魂)도 드물었다. 사티아그라하는 진실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힌두이즘의 영성(靈性)에 뿌리박은 내면의 열정, 그 아힘사(ahimsa)로부터 솟아오른 것이기에…. 아힘사는 어떤 생명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보편적 사랑, 곧 관용과 상생(相生)의 도덕률을 의미한다. 간디는 자신의 신념을 이렇게 고백했다. “아힘사는 내 신앙의 제1조이며 내 강령의 마지막 조항이다.”

 모든 종교를 향해 마음을 활짝 열었던 간디가 종교분쟁의 희생제물이 된 것은 기막힌 아이러니다. 오랫동안 서로 물고 뜯던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갈등은 끝내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으로 이어졌고, 두 종교의 화해를 위해 애쓰던 간디는 힌두교 광신자의 총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눈먼 도그마들의 싸움 한복판에서 평화의 제단에 목숨을 바친 간디는 희생과 정화(淨化)의 짜디짠 소금이었다.

 인도의 화폐에는 간디의 초상이 인쇄되어 있고, 인도의 모든 도시에는 그의 동상이 서 있다. 그러나 그 초상, 그 동상들보다 더 선명하게 간디의 모습이 아로새겨진 곳은 바로 인도인들의 마음이다. 영국인들로부터 ‘소금 도둑’이라는 별명을 얻은 간디에게 시인 타고르는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의 ‘마하트마’ 칭호를 헌정했다.

 오늘의 우리는 남북으로 나뉜 반쪽 땅덩어리에서조차 이념·세대·지역·계층에 따라 이리 찢기고 저리 갈라진 분열의 시대, 극단의 세태를 살고 있다. 4·11 총선으로 팽팽하게 짜인 새 정치판은 대선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도 격렬한 정권쟁탈전을 벼르는 중이다. 승냥이 떼의 먹이다툼처럼 사나운 패거리 싸움이 또다시 되풀이된다면,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이 나라가 또 어떤 반목(反目)의 수렁에 빠져들어 돌이킬 수 없는 퇴보의 길을 걷게 될지 알 수 없다. 소금처럼 녹아 스스로를 해체함으로써 위기의 공동체를 살려낸 간디의 아힘사, 그 관용과 화해의 윤리가 이 땅의 각박한 현실에 소금처럼 녹아들기를 갈망하는 이유다.

 82년 전의 소금행진, 그 숭고한 희생과 헌신의 발걸음은 인류의 마음속에서, 오고 오는 역사 속에서 지금도 힘겨운 평화의 여정(旅程)을 이어가고 있다. 소금행진이 단디 바닷가에 발을 멈춘 4월의 아침, 따사한 햇살과 함께 성서의 한 구절이 계시처럼 찾아든다. “소금을 지니고 서로 화목하여라.”(마가 9)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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